1910년 8월 29일 일본에 의해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36년 동안의 일제강점기로부터 광복을 맞은 1945년 8월 15일에서야 대한민국의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역사적인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1952년 4월 26일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국호에 의해 제정한 교육법 시행
최초의 여의사는 박점동(1877~1910)으로 세례명은 박에스더이다. 1909년 4월 28일. 광화문과 해태 상사이로 상체를 드러낸 북악산은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으로 온통 붉은 빛이었다. 그 자락으로 쭉 뻗어있는 육조 거리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의 발길로
서재필은 1888년에 미국의 라파에트 대학, 1889년 워싱턴 대학에서 세균학을 전공하고 당당히 의사 자격을 취득한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었다.▲서재필 박사 항간에 서재필보다 앞서 1880년 5월부터 9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미국을 방문하여 서양의학 교육 받았
석주명(1908~1950.10)은 한국의 나비 연구로서 국민들이 붙여준 최초 나비 박사다. 그의 나비 연구 일생과, 국민나비 박사가 된 사연을 풀어보기로 한다. 석주명은 1908년 11월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가 되던 해 개성의 송도중학교를
최초의 농학 박사는 우장춘(1898~1959)이다. 1936년 5월 4일에 도쿄제국대학교로부터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원 서둔동 여기산 기슭. 농업진흥청이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한 묘 한 터가 있고, 그 앞에서 다음과 같은 비 문을 읽을 수 있다.「불우와
▲ 이의경 동물학박사최초의 동물학 박사는 1928년 독일 뮌헨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이의경(1899.3~1950.3)이었다. 동물학 박사도 생소하거니와 이의경이란 이름도 생소하겠지만,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바로 그 소설의
윤치형(1896~1970)은 한국인 최초 박사이자 의학박사이다. 《매일신보》 1924년 6월 11일자에 윤치형의 의학박사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조선최초의 청년 의학박사 경성의전출신 윤치형씨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박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윤치
평양에는 1903년 10월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에서 설립한 평양숭의여학교가 있었다. 미국인 교장을 비롯해서 교사들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것에 대하여 강력히 규탄하며, 목숨 걸고 일본에 항거할 것을 호소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앉혀 놓고, 이제부터는 배워야 살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는 송복신(1900~1994)이다. 1929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진 것은 《동아일보》 1930년 2월 6일 7면이었다.「(평양)엠에이(MA)를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