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국가들 지원 거부에 당황해하는 하마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세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한 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세계 각국으로 보내는 메시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아랍어 '움마'로, 이슬람 경전 쿠란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하마스가 움마를 부르짖는 것은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운 이른바 '시오니스트'와 이교도 세력으로부터 자기네를 구해달라는 절규다. 사실 이교도에 맞서 이슬람 세계를 지키는 것은 쿠란에 여러 차례 강조된 무슬림의 의무다. "신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聖戰)하는 이가 바로 믿는 신앙인" "나의 길에서 순교한 자, 성전을 수행했거나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자들은 속죄해주고 강이 흐르는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같은 구절이 근거다. 이 투쟁이 바로 '지하드'이며 지하드를 행한 무슬림에게 '무자히드'라는 호칭이 붙는다.


▲ 가자지구 남부에 꾸려진 유엔 난민 캠프.

이슬람은 등장 직후부터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활발한 정복전쟁을 펼치며 사우디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서아시아, 유럽까지 진출했다. '샤리아'로 불리는 이슬람 법체계는 오늘날 기준에선 대단히 엄격하고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서민이 왕과 귀족으로부터 살인적 착취에 시달리던 시절에는 대단히 관대한 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슬람 세력은 피정복민의 땅을 빼앗지 않았고, 소득의 2.5%만 세금으로 내면 종교의 자유도 인정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학계에선 이슬람이 대제국을 건설한 원동력이 관대한 통치라고 본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작은 움마에서 시작된 이슬람 국가는 대제국으로 확장됐고, 엄청난 힘과 재화를 손에 넣었다. 분열과 갈등 속에서 쿠란을 제멋대로 해석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자들이 나타났다. 사이비 종교 지도자처럼 신의 이름으로 폭정을 일삼는 이가 늘면서 이슬람 사회는 점점 타락해갔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이른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대표적 사례다. 지금도 중동과 아프리카 각지에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장하며 쿠란을 왜곡해 폭정 도구로 삼는 무장단체가 즐비하다.


하마스는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세력 중에서도 악질적인 조직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와 팔레스타인 독립을 궁극적 목표로 내세운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하마스의 지속적인 테러 탓에 거대한 장벽에 둘러싸인 가자지구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물과 전기는 이스라엘에, 생필품 대부분은 외부 세계의 인도적 구호품에 의존한다.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존재하지만, 무력을 가진 군벌이자 정당인 하마스가 실질적 통치력을 행사하는 실정이다. 하마스는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거의 모든 물자와 지원금을 독식하고 있다. 그들에게 지하드는 외부 지원을 이끌어내고 주민을 상대로 한 갈취를 정당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불과한 것이다.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10월 7일 하마스 지도부는 가자지구에 없었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카타르 5성급 호텔에서 지도부와 함께 TV 중계로 자기네 '작전'을 지켜봤다. 그들은 하마스 조직원이 음악축제 현장을 덮쳐 민간인을 살상하고, 민가에 난입해 영유아를 참수(斬首)하는 등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자축하는 자기네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까지 했다. 하마스에는 조직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최고 의결기구 정치국이 있고, 군사조직으로 '알카삼 여단'을 두고 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죽어나가는 '하마스 간부'는 하마스라는 정치단체의 간부가 아니라 하위 군사조직인 알카삼 여단의 간부들이다. 하니예를 비롯해 정치국 간부는 대부분 이스라엘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10년 넘게 가자지구에 가본 적도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카타르, 튀르키예 등지의 고급 호텔과 초호화 리조트, 별장에 기거하고 고급 세단과 전용기까지 굴리며 살고 있다.


하마스 지도부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이자 외교담당 위원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가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뱉은 망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인터뷰어가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500㎞에 달하는 터널을 만들었는데, 왜 폭격을 당하는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한 방공호는 만들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충격적 답변을 내놨다. 마르주크 부의장은 "그 터널들은 적기로부터 우리(하마스)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우리는 터널 안에서 싸운다"면서 "가자지구 주민 75%는 난민이고, 그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유엔과 점령군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하마스에 팔레스타인 주민은 그저 구걸 수단이자 갈취 대상이며, 적의 공격을 막는 '인간방패'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표면적으로 전 세계 무슬림 사회는 팔레스타인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이스라엘과 이를 지지하는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번 사태 배후로 의심받는 이란은 최고지도자와 대통령, 혁명수비대 지휘부가 나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보내면 이스라엘 대도시 하이파에 탄도미사일을 쏠 것"이라고 위협했다.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당장이라도 이스라엘 북부에 새로운 전선을 열 것처럼 큰소리치고 있다. 이란이 지원하는 시리아 및 이라크 군벌들도 연일 이스라엘과 미국을 성토하며 병력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예멘을 장악한 후티 반군 지도자는 "예멘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보호하고자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미사일 몇 발을 날린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미군 기지를 겨냥한 드론 공격이 발생했으나, 이번 팔레스타인 사태를 지켜보는 움마의 대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란과 중동 각지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입으로만 이스라엘과 미국을 성토할 뿐, 실질적 군사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명분', 둘째는 '공포' 때문이다. 우선 이슬람 국가들은 극악무도한 테러단체가 돼버린 하마스를 지원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같은 시아파는 물론, 수니파 국가와 단체들로부터도 다양한 유형의 지원이 팔레스타인에 제공됐다. 그런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지원 대부분이 하마스 손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하마스가 주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간방패로 쓰거나 인질극을 벌이는 모습이 외신 보도와 드론 영상을 통해 폭로되면서 아랍 각국 정부는 하마스를 지원 대상이 아닌 골칫거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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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