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베트남에 韓 수출기업 ‘발등’… “제2의 중국될라”
한국 3위 수출국인 베트남의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베트남이 대(對)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대베트남 수출액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감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액이 4.4% 감소하는 동안 베트남 수출액은 7.5% 늘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악화했다. 1~4월 베트남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6.3% 급감했고, 중국 수출액은 29% 감소했다.
베트남은 중국, 미국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3위 수출국이다. 지난해엔 최대 무역 흑자국(343억달러)이었는데, 올해 1분기엔 57억달러 흑자로 미국(72억달러)에 이어 2위로 밀려났다.
◆“베트남 공장 멈추면 수출도 급감”
베트남 수출이 부진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글로벌 경기가 악화하면서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베트남 경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베트남으로 반도체 등 중간재(최종 제품 생산에 투입하는 재료)를 보내는 우리 기업 수출도 대폭 줄어들었다. 대중국 수출 부진과 같은 이유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에 타격을 입은 뒤 회복이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2020년 상반기부터 베트남은 강력한 코로나 봉쇄 정책을 고수했다. 섬유, 의복 등 소비재 재고가 공장에 쌓여갔다. 미국, 유럽국가 등으로 수출하는 물량의 재고가 소진되지 않으면서 베트남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경영 상황도 나빠진 것이다.
우리나라 섬유 제조 중소기업 A사의 김모 대표도 코로나19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업체는 2017년 베트남 호찌민 외곽에 공장을 세워 현지 직원 4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는 코로나 확진자들만 제외한 채 공장을 가동했는데 베트남 정부는 몇 달씩 공장 폐쇄를 단행했다”며 “외국 바이어들이 베트남에 사업장들 둔 회사에 주문을 안 주려고 하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대체 불가하지만 수출국 다변화 필요
베트남은 소비 시장이라기보다 생산 공장에 가깝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베트남 수출액 88.8%를 중간재가 차지했다. 중간재를 통해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완제품을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대체 불가능한 생산 공장이라고 진단한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전략실장은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노동 가능 인구가 너무 적고, 미얀마는 정치 상황이 불안하다”며 “인도네시아는 섬나라인 데다 인프라가 부족하고, 태국은 국민소득이 아주 높아 베트남과 비교하면 인건비가 비싸다”고 설명했다.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서의 매력이 월등하지만 이 같은 이유로 베트남에만 의존하면 베트남 경제가 안 좋아졌을 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보고서에서 베트남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6.0%로 전망했다. 지난 3월 전망치(6.3%)에서 하향했다. 올해 베트남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2월을 제외하고 5월까지 계속 50 이하로 나타났다. PMI가 50 이하면 제조 업황이 침체하고 있다는 의미다.
생산 공장이 아닌 소비 시장으로 키우기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트남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560달러 수준이며, 지난해 기준 베트남 수출 중 소비재 비중은 4.2%에 불과했다. 곽 실장은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하면 우리 소비재 진출을 노릴 만한 시장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제품이 그 나라에서 소비되기에 너무 비싸고 품질도 높다”며 “베트남 시장에 맞는 제품을 새로 개발하는 비용이 더 큰 셈”이라고 했다. 중간재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아세안 국가 안에서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크게 의존해 힘들었던 것을 교훈 삼아 베트남에 ‘올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간재 수출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중국과 무역구조가 비슷해 장기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역별 특화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 연구위원은 “이전 정부는 신남방(인도와 아세안) 정책을 공식화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특정 지역 정책은 부각되지 않는 것 같다”며 “전략적으로 신흥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을 집중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일즈 외교, 돌파구 될까
윤석열 대통령은 22일부터 사흘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국빈 방문에는 205명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한다. 이는 윤 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다.
사절단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곽희옥 유니크미 대표는 “베트남 시장을 넓힐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니크미는 화장품 제조업체로 2019년부터 베트남에 진출했다. 2020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쯔엉 선수와 1년 전속모델 계약을 맺었으나 코로나19로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곽 대표는 “양국 관계가 좋아지면 기업에도 분명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3년간 시장이 닫힌 만큼 반등 기대도 크다”고 했다.
순방을 계기로 정상 간 신뢰를 다져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3월 교체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은 친미·친중도 아닌 실리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곽 실장은 “새 주석의 성향이 친베트남이라 할 만큼 베트남에 이익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어떤 기업이든 한순간에 멀어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든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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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