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방탄으로 얼룩진 임시국회

9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1월 임시국회가 시작됐다. 민주당의 단독 소집 요구서 제출로 열린 임시국회는 예상한 대로 첫 날부터 공전이었다. 민주당은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을 '안보 위기'로 규정하고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 질의를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은 수용을 거부했다. 이번 임시국회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을 위해 소집된 것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은 산적한 민생현안을 외면하고 임시국회에 협조하지 않는 여당이야말로 '직무유기'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의사일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10일 본회의 표결을 통해 긴급 현안질의 실시 여부를 결정한 뒤 야당 단독으로 안보·경제 현안질의를 하겠다고 압박했다.

민주당은 안전운임제 등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북한 무인기 침범으로 불거진 안보 위기 사태 와 관련한 대정부 현안 질의를 관철한다는 입장이다. 9일 '안보 참사', 10일 '경제 위기' 등을 안건으로 이틀 동안 긴급 본회의 현안 질문을 추진하겠다며 긴급 현안 질의 요구서도 제출했다. 특히 무인기 침투와 관련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인근 지역 촬영 가능성 등을 놓고 군 당국의 은폐 의혹이 불거진 만큼 철저히 따지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진정으로 민생입법을 논의하겠다면 쟁점 법안과 긴급 현안 질문을 여야가 충분한 협의한 뒤 설 연휴 이후에 임시국회를 소집해도 되었다며 '빈틈없는 이재명 방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에 대한 범죄혐의 수사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며 이 대표의 검찰 출석을 계기로 '사법 리스크'를 강조하며 기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까지 끄집어내 비판 여론을 확산 시킬 예정이다.

여야의 대치를 떠나 이번 임시국회에선 할 일이 태산같다. 당장 민생·경제 법안 처리가 화급하다. 대표적인 것이 30인 미만 사업장의 8시간 추가 연장근로제 일몰 연장 법안이다. 이 제도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일몰되면서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견디다 못해 이날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연장근로 단위 기간 확대 및 근본적 대응 마련을 촉구했다.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면서 정부는 하루빨리 제도 개편 법안을 마련하고 국회는 입법 과정에서 적극 협조하라고 요구했다. 전례없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방안 마련에도 머리를 맞대야할 상황이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 추가 확대를 위한 법안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않으면 K-반도체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그런데 민생을 앞세우며 열린 임시국회를 여야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임시국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여야 두 원내대표들은 모두 자당 회의에서 상대방을 비난했을 뿐 제대로 된 만남도 갖지 않았다. 여야 간 대치 전선은 이재명 대표의 검찰 출석 이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개점 휴업'이다. 정작 김 의장을 포함한 다수 국회의원이 현재 외국에 있거나 외국 출장을 갈 예정이라 본회의 소집이 당분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1월 임시국회 소집의 명분인 긴급현안질문 개최가 여의치 않은데도 민주당이 1월 임시국회를 연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탄 임시국회’라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국회 사무처 등에 따르면, 1월 중 의원외교 활동을 위해 출장 중이거나 출장을 갈 여야 의원은 최소 43명이다. 이 가운데 1월 임시국회를 소집한 민주당 소속 의원은 24명이다. 일단 이날 김 의장은 8박 10일 일정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김 의장 순방을 수행하는 여야 의원은 5명이다.

또한 긴급현안질문 개최 관련 열쇠를 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는 14~20일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에 동행했다. 여기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한일의원연맹 회장) 등 국회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 10명은 재일동포, 일본 관방장관 등과 만나기 위해 같은날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1월 출장은 지난해 사전에 조율된 만큼, 최근 민주당이 소집한 이번 1월 임시국회는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한 ‘방탄용’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결국 설날 전까지 긴급하게 해야 할 국회 현안이 없는데도 12월 임시국회에 이어 곧바로 1월 임시국회를 단독으로 소집한 것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해야 하는 비회기를 만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국회 회기 중 현역 의원을 구속하려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처리돼야 한다. 이것이 방탄이 아니면 무엇인지 민주당에 묻고 싶다. 앞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얄팍한 정치적 셈법이 아닌 실제 국민 삶을 지키고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그 말대로라면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정쟁을 접고 민생·경제 법안 통과에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임시국회가 방탄을 감추기 위한 쇼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애당초 1월 임시국회는 열릴 이유가 없었다. 민주당은 주 52시간 추가 연장 근로 등 각종 일몰 법안 처리를 소집 명분으로 들었지만 굳이 1월 중에 서두를 사안이 아니었다. 연말에 터진 북한 무인기 사태도 이유라고 했지만 핑계였을 뿐이다. 혹시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할까 봐 국회 문을 계속 열어두려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며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한 대비도 마친 상태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말 이 대표 취임 전후부터 모든 행보가 ‘방탄용’ 공세를 받고 있다.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가 예고돼 있어 방탄 프레임 제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예산안 합의 처리 등을 두고 여야는 매번 강 대 강으로 대치했다. 그 와중에 검찰은 전 정부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제1야당 당사까지 압수수색했다. 그때마다 여당은 민주당의 공격에 대해 방탄용이란 비판으로 대응했다.

당의 대응이 방탄 프레임을 굳힌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23일 국민의힘과 이태원 국정조사에 합의했으나 이틀 뒤인 25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장관 파면을 요구했고 5일 뒤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이 역시 ‘방탄용’으로 몰렸다. 이 장관의 정치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별개로 안전관리 주무 장관을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 앉혀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적절했느냐는 말이 있었다.

민주당이 ‘단독 예산안’ 처리를 공언하고,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당시 거리 두기를 하지 못했고, 이 대표 수사 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 등이 방탄 이미지를 굳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표의 검찰 출두 현장엔 당 지도부를 포함해 조폭영화 패러디가 나오고 민감한 질문을 하는 기자를 밀어버리는 장면까지 보이며 ‘기자를 밀어서 잠금해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현역 의원 43명이 동행했다. ‘방탄 출두’라는 말도 나왔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국민에게 이 대표 방탄을 몸소 보여줬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대표는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외에도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10여 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모두 민주당과는 무관한 이 대표의 개인 의혹들이다. 이 모든 경우에 ‘방탄 출두’하고 ‘방탄 국회’를 열 것인가. 민주당의 계속되는 ‘방탄 노력’이 안타깝게 보인다.


▲ 이우성 뉴스젠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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