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점점 산으로 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민의힘 새 당대표 선출을 위한 3·8 전당대회가 당권 주자 간 '윤심잡기' 경쟁에서 대통령실과 안철수 후보 간 정면충돌로 번지고 있다. 익명의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윤 대통령의 언급을 인용해 '국정운영의 방해꾼', '적' 등의 표현으로 안 의원을 겨냥하면서다. 안 후보는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이라고 반발했지만, 대통령실은 "누가 대통령을 전대에 끌어들이고 있느냐"며 오히려 안 후보를 공개 비판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 때처럼 특정 후보를 겨냥한 '친윤계 공격 후 대통령실 가세' 모양새가 계속되면서 당내에선 대통령실의 전대 개입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2021년 전대 때와 달리 이번 3·8 전당대회는 결선투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기에 마지막까지 변수가 계속해서 생성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표의 이동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주자들 간의 날 선 신경전이 연일 보도되면서 자칫 넘지 못할 선 앞에까지의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말이 신경전이지 듣기에도 아슬아슬할 정도의 수위에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했다시피 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 이후 안철수 의원은 나 전 의원 지지세를 상당 부분 흡수하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는 것만 당원 표심의 변동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안철수 의원과 김기현 의원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 전개되면서 양후보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모양새다.
여기에 전당대회가 다가오면서 윤심 공방이 수면으로 떠오르며 자연스럽게 대통령실이 당 대표 선거의 중심에 서 버리게 됐다. 비정상적이다. 김장연대에서 비롯된 연대는 윤안연대로 이어졌고, 오래된 윤핵관이 다시 등장하면서 윤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이번 전당대회의 최대 관심사가 돼 버린 셈이다.
윤핵관과 관련해서는 급기야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까지 전해졌다. 국민의힘도 윤핵관 표현을 사실상 금지어로 지정했다.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에서 윤핵관을 향해 “우리 당과 대한민국 정치를 망치는 간신배”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서도 정 위원장은 "'간신배', '윤핵관'이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을 들먹이며 선거 분위기 자체를 혼탁하게 만들어가는데 스스로 자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는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선 주자가 여당 대표가 되면 자기 정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대통령과 삐걱거릴 수 있다. 총선 공천권까지 끼어들면 더욱 그렇다. ‘안-윤 연대’ ‘윤핵관’ 등으로 대통령을 경선판에 끌어들인 안 의원의 실책도 있다. 그러나 친윤 주류들은 도가 지나치다. 특정인과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고 설득하는게 우선이며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정치 리더십인데 이번 전당대회를 앞둔 현 상황에서는 리더십은 실종되고 연일 갈등만 조장하고 있을 뿐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한마디로 ‘이전투구(泥田鬪狗)’다. 말그대로 ‘개싸움’이란 말이다. 이런 ‘개싸움’의 이면에는 바로 총선이 있다. 공천권을 쥐는 대표에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여당 내의 정치 지형은 물론이고 정치권 전체의 판세가 바뀌기 때문이다.
맞다. 정치는 현실이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성공적으로 흥행하려면 싫든 좋든 유력 후보들을 무대에 올려 잔치판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이른바 친윤 주류는 특정 후보만 밀면서 가지치기에 나섰다. 어떤 선거라도 선거 승리를 위해선 중도를 잡아야 한다는 건 철칙이다. 시끌벅적해야 할 전대가 특정 계파의 나 홀로 잔치가 돼 버린다면 중도 확장성은 막힌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남는 것이 이분법적 대결뿐이라면 내년 총선은 기약하기 어렵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지금 정치판에서는 뒤바뀐 듯하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성패를 가른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윤 정부를 옭아매고 있는 판에 여소야대 정국을 뚫지 못한다면 노동, 연금, 교육 개혁 등 핵심 과제들은 물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에서 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란 말이 기우만은 아니다. 그런데도 총선 승리를 향한 여정의 첫발인 전대를 만인대 만인의 투쟁처럼 만들면서 시작부터 국민의힘은 난파선이 되고 있다.
민심이반이라는 단어는 정치권에서 유독 많이 쓰인다. 당심과 민심이 어긋나 총선이나 대선에서 참패를 한 사례를 우리는 많이들 보아왔다. 국민의힘은 그런 점에서 윤심이 과연 민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이번 대표 선거는 당심만으로 이뤄진다. 그만큼 민심이반이 일어날 경우 그 후폭풍은 어느때보다 클 수 있으며 야당에 정치공세의 빌미만 제공하게 될 것이다.
윤심 논쟁에 전당대회 이슈가 매몰되면서 국가 개혁 방안이나 정책·비전을 둘러싼 후보들의 의견이나 토론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집권당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국민의힘 당권 도전에 나선 후보들은 이제라도 윤심 정쟁을 멈추고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 실천과 구체적 정책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윤심을 구애할 것이 아니라 민심을 구애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집권 3년차에 의회 권력을 가져가지 못할 경우 곧바로 레임덕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정권의 성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행정과 입법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제다. 그래서 협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협치는 아예 없고 서로 비난만 해대며 독설이 담긴 단어가 난무하는 당 대표 선거는 결코 민심을 등에 업을 수 없다. 윤심이 아니라 민심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전당대회가 보고 싶다.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다. 민심을 얻지 못한 당대표는 출발부터 원동력을 상실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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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