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관계의 목적은 성장이다
어느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설립하여 운영을 시작했다. 지하실 작은 공간에서 처음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신도 수는 자기 가족 이외 몇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교회에 우연히 어떤 청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청년은 교회에 상당한 애착이 있었다. 그의 애착만큼 모든 교회 일에 간섭하고 일일이 잘했다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설교 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지적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참견했다. 그 목사님은 그 청년 때문에 설교할 때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매사 교회 일을 추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몇 안 되는 신도들이며 포교를 하겠다고 교회를 개척한 입장에서 그 청년에게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 청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어느 날 건축현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주변이 많이 흐트러져 있고 지나가기 불편했다. 가는 길 앞에 “공사 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그 팻말을 보는 순간 그 목사님은 크게 깨우쳤다고 한다. 아 우리는 누구나 바람직한 삶을 일구어가기 위해 공사 중에 있는 자들이구나! 공사 중에는 누구나 상대방에게 불편을 끼치는 구나! 그 청년이나 목사인 자신이나 현재 공사 중이다. 그러니 서로 불편을 끼치는 것이다. 이를 수용하자. 그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서로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자! 이러한 깨우침을 통해 그 목사님은 그 청년을 수용하고 자기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다 이 삶의 현장에서 더 나은 인격체가 되기 위해 공사 중인 사람들이다. 공사 중이기 때문에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상위 인격체를 만들어가는 삶이라는 공사 현장에서 우리는 이런 저런 사람들과 서로 관계를 형성한다.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서로 공감하며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행복은 잠시지만 갈등과 오해 그리고 원망은 늘 함께 한다.
우리는 아직 익지 않은 과일들이다. 아직 익어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실수 할 수밖에 없고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덜 익은 과일은 떫다. 이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났다면 그 마찰이 일어난 부분이 아직 성장시켜야 하고 긍정적 변화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는 관계를 통해서 발견된다. 미숙한 점이 있어 상대와 마찰 빗게 되면 이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 고통은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이다. 그리고 고통을 극복하면서 인격은 성장한다. 고통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모든 관계가 멈추는 순간이 죽음이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을 버릴 때에만 사라지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
- 법구경
관계에 서로 원한이 있다면 갈등으로 나타난다. 서로 부딪히면서 아파한다. 아픔을 극복하고 원한을 해소하면서 서로의 인격은 성장한다. 원망은 원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더 큰 생각 더 넓은 관점에서 만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풀리지 않는 관계는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넓게 보라는 메시지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문제를 일으킨 수준의 생각과 감정의 틀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문제를 발생시켰을 때와 똑같은 의식수준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관계의 목적은 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는 데 있지 않고 서로 성장하자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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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