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황건적의 난1.
2. 황건적(黃巾賊)의 난
대현량사(大賢良師)
거리는 매우 번잡했다. 호박을 실은 일량거를 미는 짐꾼과 강에서 잡은 생선을 담은 멜대를 어깨에 멘 어부 사이를 짐을 가득 실은 마차가 밀고 들어왔다. 마부는 행인을 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몰았다. 장터 한 복판까지 처마를 밀어낸 상점들에서는 건어물이며 채소들을 길에 내놓고 팔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약재를 저울에 달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단을 치수를 재어가며 가위질을 했다. 각기 제 일에 바쁘던 사람들이 갑자기 동작이 빨라지더니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현량사(大賢良師) 납시오.”
길게 뽑은 목청소리에 이어 복잡하던 길이 두 갈래로 쫘악 갈라졌다. 시장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점포 안에 있던 상인들 중에는 저울과 주판을 내던지고 길가로 나와 무릎 꿇고 향을 사르는 자들고 있었다.
“아이고. 현사님 왕림하셨습니까? 영광스럽습니다. 우리 영천(潁川) 시장이 이처럼 번영하는 것도 다 현사님이 축수해 주셔서...”상인 대표로 보임직한 노인이 연신 굽신거리며 길 안내를 했다.
현사라 불린 사내는 사십대 중반에 소매가 긴 검은 도포를 입고 높은 관을 썼다. 좌우에는 학창의를 입은 제자들이 길게 시립했다. 간간이 눈매가 우락부락한 장한들도 섞여 있었다. 병장기를 소지한 것으로 보였다. 일부 제자들은 은괴나 동전, 비단들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선채로 빠르게 손을 놀려 부적을 써서 나눠주고 있었다.
대량현사라 불리는 사내는 가볍게 손을 내밀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장 사람들을 축수해 주었다. 그가 손을 내밀 때마다 군중들은 머리를 더욱 조아렸다. 위풍이 당당한 대현량사는 백성들이 허리를 깊이 숙일 때마다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가득 흘렸다. 길을 오른쪽으로 돌자 시장에서 가장 큰 반점이 나타났다. 주루와 숙박시설이 갖추어진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길목 어귀에 마중 나와 있던 사람들 중에는 행색으로 보아 지방관리들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반점 주인이 버선발로 나와 대현량사를 맞이했다.
마당에는 하남지방의 대방과 소방 방주들을 포함한 태평도(太平道)의 주요 간부들이 집결해 있었다. 대청 위에는 상제의 제단이 마련되었다. 태평도는 최근 크게 일어난 황로도(黃老道)의 일파였으므로 황제와 노자의 상과 신위도 함께 모셔졌다. 엄숙한 표정으로 제사와 집회를 집전하고 난 후, 대현량사는 집회에 참가한 간부들에게 축수했다. 시동들이 엎드려 절하는 간부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성수를 뿌렸다.
집회를 마치고 난 후 대량현사는 법문을 한마디 내뱉었다.
“푸른 하늘을 이미 죽었으니 마땅히 누런 하늘이 일어나야 하리라. 갑자년에는 천하가 대길하리라(蒼天已死,黃天當立,歲在甲子,天下大吉).”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집회는 끝나고 대량현사는 내실로 들어갔다.
대현량사는 주루 뒤쪽의 별채에 묵고 있었다. 사람들을 풀어 별채로 통하는 모든 문을 지키게 했다. 별채 주변엔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 하지 못했다. 굵은 황촉대만 두 개 있는 방안은 어두웠다. 태평도인 장각이 좌대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일렁거리는 촛불에 비추어선지 검게 보이는 얼굴은 눈꼬리가 치올라가고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무척 권위적인, 낮에 장터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마원의. 형주와 양주의 형세는 어떠한가?”
“형, 양주의 교도들은 이미 수만에 이르렀습니다. 곧 십만에 달할 것입니다. 모두 현사님의 말씀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습니다.”
마원의라 불린 사내는 등짝이 널찍하고 키가 컸다. 수놓은 비단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몸뚱이를 연신 조아려 최대한 작게 오므리고 있었다.
“하남에서도 지난해 전염병이 크게 돈 후 신도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병에 걸렸다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다 형님께서 하사한 부적을 태워 성수에 개어 먹고 난 후 병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고 제 입으로 떠들고 다닙니다. 전도가 저절로 됩니다. 하남 대방도 조만간 십만을 채울 것 같습니다.”
대현량사 장각의 바로 아래 동생 장보였다. 그는 하남지방의 예주, 연주를 책임지고 있었다. 투박한 목소리로 다소 장황하게 제 말을 늘어놓았다.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장각이 장보의 뒤에 시립해 있는 장한들에게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일전에 말씀드린 파재와 팽탈입니다. 파재는 지금 여남 소방의 거수입니다. 천하장사인데 원래 양적현 소년배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따르는 무리가 많습니다. 팽탈은 진국 사람인데 서화현 저잣거리에서 개백정을 했었습니다. 개종하기 전에는 협기와 의리로 유명했었습니다. 둘 다 지금은 개과천선해 우리 하남 교단의 큰 기둥들입니다. 앞으로 큰일 좀 할 겁니다.”
장보는 무척 자랑스러운 듯 장각에게 눈짓까지 하면서 떠들어댔다. 장각은 두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두 사람 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장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보는 소매를 가볍게 흔들어 두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낙양의 일은 어떻게 돼 가는가?”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봉서가 궁중에서 저희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마원의가 널찍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답했다. 입이 길게 찢어지면 이죽거리는 듯한 인상이었다. 구변이 좋기로 유명했다.
“봉서라면 중상시인데, 그가 우리 교단을 돕겠다고?” 장각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봉서는 원래 황로도에 관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평소에 참선과 환약 달이는 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궁중에서도 황제의 양기를 돋우는 일을 했던 모양입니다. 멀리서 현사님의 명성을 들어 익히 알고 있더군요. 마침 그 밑에서 일하는 서봉이라는 환관이 있는데 저희 신도입니다. 다리를 놓아 몇 번 만났습니다. 저희 일을 황제께 좋게 말씀드리겠다고 하더군요. 궁중 정치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돈 좀 빌려줬습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수천만 전은 족히 됩니다.”
마원의는 비실비실 웃었다.
“봉서는 재물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주어라.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동그라미 하나는 더 붙여서 주어라. 지난번에 들었는데, 봉서가 나의 표신을 원한다고? 예 있다.”
장각이 소매를 뒤적여 푸르스름한 비취에 글을 새긴 옥패를 내어놓았다. 대방의 거수들도 쉽게 받을 수 없는 대현량사를 대리할 수 있는 자격을 나타내는 표신이었다.
“이리하면 봉서는 저희 교단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입니다.”
봉서는 궁중 암투에서 밀리고 있었다. 궁중의 권력을 장악한 열 명의 중상시들을 세상에서는 십상시(十常侍)라고 통칭해서 불렀지만 그들이 모두 일치단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권력의 속성상 집단지배체제는 오래가기 어려웠다. 약한 놈부터 하나씩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세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돈도 필요하고 여차하면 기댈 세력도 필요했다. 게다가 태평도를 신봉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만하면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소 피곤함을 느낀 장각은 손짓으로 물러가라는 표시를 했다.
영천고을은 상공업이 발달한 번화한 도시였다. 물산이 풍부한 회남 지역에서 생산된 비단과 곡물, 또 강동지방의 진귀한 남방 물품까지 다양한 생산품들이 영천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영천은 낙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상인이 많다보니 재력가도 많았다. 신분은 평민이었지만 경제력은 물론 사회적 영향력도 사족들을 능가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태평도와 같은 새로운 정신 사조의 등장을 환영하는 자가 많았다. 사대부 중심의 기존 정치체제 내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장각이 형, 양주의 일을 맡긴 마원의도 이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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