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포기하되 조건 단 민주당…내부서도 "우스꽝스런 결말"
18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당 내 혁신위의 1호 제안을 한 달 가까운 고민 끝에 수용한 모양새이지만, 오히려 논란은 커지고 있다. 우선 형식 측면에서 결의문이 없었고, 당론 채택도 하지 않았다. 또 내용적으로는 불체포특권 포기의 전제로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당 안팎에서 “우스꽝스러운 결말”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의총에 이어 이날 모두발언에서도 “불체포 권리를 내려놓겠다는 선언을 모두가 추인(追認)해 주셨으면 한다”고 거듭 호소한 결과다. 혁신위원회가 지난달 23일 1호 혁신안으로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와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요청한 지 26일 만에 내린 결론이다.
민주당은 그러나 불체포특권 포기에 ‘조건’을 달았다. 해당 의제를 꺼낸 박 원내대표부터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자”고 제안했다. 정당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볼 때 특별히 이례적으로 부당한 영장 청구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불체포특권을 내려놔야 하지 않겠나”라며 “정당한지가 여론으로 어렵지 않게 판단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대변인은 정당성을 판단하는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당내 기구를 만들 일은 아닌 것 같고, 추후 체포동의안이 올 경우 사전 의총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여러 의원들의 의견을 모을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국민 눈높이’란 기준 자체를 놓고도 당 내에서 말이 많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 때도 ‘국민 눈높이’를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더불어시민당 정도상 공관위원장은 공천 작업에 앞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후 ‘국민 눈높이가 무엇인가’라는 취재진 물음에 “국민의 눈높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얘기하냐”고 반문하며 “의심을 갖는 건 좋은데, 우리의 진심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날 불체포특권 포기는 당론 채택이나 결의문 발표 없이 ‘대변인 브리핑’만으로 이뤄졌다. 김 대변인은 “의총에서 (원내지도부) 보고 자체가 대변인을 통해 국민께 설명해 드리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제안이었다”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당초 혁신위가 요구했던 ‘당론 채택’을 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도 “이런 부분은 과거에도 꼭 공식 추인 절차를 거치진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결론을 두고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중진 의원 다수가 “불체포특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는 논리로 반대한 상황에서, 1호 혁신안으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내세운 혁신위의 체면을 살리려면 대폭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 비주류 역시 “안 하는 거보단 낫다”(박용진 의원)라거나 “만시지탄”(이원욱 의원)이라고 평가했다.
당초 민주당을 향해 “(안 받으면) 망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을 것”(12일 김은경 혁신위원장)이라며 날을 세웠던 혁신위는 이날 입장문에선 “의원총회의 결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당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불체포특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해 “등 떠밀린 껍데기 혁신안”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고 추인한 안이 고작 ‘정당한 영장청구’라는 단서를 붙인 하나 마나 한 ‘껍데기 혁신안’이라니, 차라리 특권을 포기하기 싫다고 고백하는 편이 낫겠다”며 “결국 온갖 이유와 핑계를 들어가며 특권 뒤에 계속 숨어 있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브리핑에서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단서는 '‘검찰독재’, ‘야당탄압’ 프레임 안에 숨는 짓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며 “민주당은 제 손톱도 못 깎는 지경에 이르렀다”(이재랑 대변인)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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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