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분노 분출시켜라" 북한 이메일 지령…법원 중형


"이번 특대형참사를 계기로 사회 내부에 2014년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투쟁과 같은 정세국면을 조성하는데 중심을 두고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로 분출시키기 위한 조직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으면 합니다."

모두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2주 정도 지난 2022년 11월 15일께 당시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석모(53)씨는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이 보낸 이와 같은 지령문을 이메일 등으로 받았다.

북한 지령을 받아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 활동을 하거나 중국과 캄보디아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된 민주노총 전 간부 재판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년간 100여차례에 걸쳐 북한 지령문을 받아 움직인 혐의로 작년 5월 구속기소 된 석씨에게 지난 6일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지령문 수신·보고문 발송뿐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오산 공군기지 내 시설·활주로·미사일 포대 등을 촬영한 영상·사진이 포함된 파일 등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사실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북한 공작원이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크나큰 고통에 함께 슬퍼하면서 애도의 심정에서 지령을 내렸을 리 만무하다"며 "지령문과 보고문의 내용들은 모두 단 하나의 목표인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으로 귀결되고, 피고인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장기간 이에 동조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석씨는 이런 지령을 받은 것뿐 아니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내 시설, 활주로, 미사일 포대 등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북한 공작원이 이태원 참사 유족의 크나큰 고통에 함께 슬퍼하며 애도의 심정에서 지령을 내렸을 리 만무하다. 지령과 보고문의 내용은 단 하나의 목표인 ‘한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으로 귀결된다. A씨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장기간 이에 동조했다”며 A씨를 질타하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석씨가 공작 진행 상황을 수시로 북한에 보고하고 “남조선 혁명운동에 대한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도” “모든 것을 다 바쳐 나갈 것” 등을 언급하며 보낸 충성 맹세도 드러났다. 석씨의 메모리카드를 구동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파일에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해 달라는 북한 측 지령도 있었다. 석씨는 지령에 따라 계파별 선거 전략 등을 취합해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이 부분 혐의가 사실이라고 보고석씨의 간첩죄를 인정했다.

1심 법원이 이 같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법정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모인 방대한 분량의 디지털 증거의 적법성 여부가 다퉈졌다.

특히 간첩 의혹 사건은 피고인 측에서 모든 진술을 거부하면서 증거가 조작되거나 위법한 방식으로 수집됐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 증거의 효력이 유무죄를 가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서는 수사 단계에 참여해 증거 수집 경위 등을 잘 아는 검사가 공판에도 참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들은 만약 수사검사의 직무대리 발령을 통한 공판 참여가 불가능해지면 간첩 의혹 사건 재판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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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