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로 입고, 영정 사진 찍고 싶다”…노병들 ‘영웅의 제복’에 감격
"90세가 넘으신 6·25참전 어르신들이 멋진 제복 한 벌씩을 받으시고, 너무 좋아하십니다. 손 편지도 보내주시고, 고맙다고 전화도 주시고, 국가보훈부 직원들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6·25전쟁 정전 70주년 하루 전인 지난 24일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페이스북에 70년 만에 새 제복을 받은 한 노병의 꽃무늬 새긴 노란 손편지와 함께 이같은 글을 남겼다.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부 6·25참전 유공자 제복 담당자에게 날아든 이 손편지 주인공은 6·25 전쟁 참전 노병 남상소(90)씨였다. 노병은 전날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정부가 6·25 전쟁 참전 용사를 위해 제작한 명예 제복을 받았다. 그는 "양복이 색깔도 좋고 모양도 좋아서 앞으로 모임 등에 입고 가겠다"며 "90세가 되니 귀가 어두워서 전화를 못해 서신으로 감사의 말씀 올린다"고 고마워했다. 1951년 봄 18세에 입대했다는 노병은 "나라에서 잊지 않고 계속 복지에 신경 써 감사드린다"고 했다.
‘6·25전쟁 제73주년 행사’가 열린 25일 오전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참전 용사 250여 명이 처음으로 보훈부가 제공한 ‘영웅의 제복’을 입고 단체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연갈색 재킷과 흰색 셔츠, 남색 바지와 넥타이 차림으로 시원하고 통풍성이 좋은 리넨(linen·마)소재 새 제복은 격식 있고, 각 잡힌 듯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으로 노병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제복을 구상하고 제작한 김석원(53) 앤디앤뎁 대표는 "6·25참전유공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입기 편한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참전 용사들이 착용한 ‘영웅의 제복’은 정부가 지난해 ‘제복의 영웅들’ 사업을 통해 만든 명예 제복으로, 이달부터 6·25 참전용사 5만1000명에게 무상으로 지급되고 있으며, 2차 신청을 받아 올해 말까지 모두 전달할 예정이다.1월 1일 이후 생을 달리한 참전유공자들은 유가족이 신청하면 제복을 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참전 노병들은 대부분 90세 이상 연로한 분들이다. 장사상륙작전에 유격대로 참전한 학도의용군 출신 노병 류병추(91)씨는 "국가에서 멋들어진 제복을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저와 같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밖에 제복을 전달받은 노병들은 보훈부에 전화나 문자로 "제복 잘 받았다. 잘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마음에 든다. 앞으로 잘 입고 다니겠다", "제복 입은 영정 사진을 찍고, 수의로도 사용하겠다"는 등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보훈부는 "목숨을 걸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한편 전후(戰後) 폐허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킨 6·25 참전 유공자들의 헌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위대한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주제로 이날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명예 제복은 지난해 보훈부가 참전 용사들을 위해 만들었다. 참전 용사들은 그동안 6·25 참전유공자회에서 만든 조끼를 사비로 사왔다. 하지만 일각에서 참전 용사들의 조끼를 비하 대상으로 삼았고, 보훈부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복 제작에 나선 것이다.
2022년 공개된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반응은 뜨거웠다. 보훈부에 따르면 원래 프로젝트는 10명의 참전유공자가 시범 착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으나 뜨거운 국민의 반응을 접하고 사업이 확대돼 생존 6·25 참전 유공자 전원에게 새 제복을 지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전환됐다. 보훈부는 "나라의 세금을 이런 데 써야 한다는 댓글도 많고, 참전용사들이 이런 처우를 받고 있다는 걸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이 같은 호응이 보훈부가 사업을 확대해 참전유공자 전원에게 새 제복을 지급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석원 대표는 최근 정책주간지 K-공감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이 새 제복을 영정에 올리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살아계신 분들 중 수의(壽衣)로 입고 싶다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단순히 참전유공자만을 위한 디자인 작업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며 "이 제복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말했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기존에 입고 계시던 조끼를 살폈는데 다닥다닥 붙어 있던 훈장이나 약장 때문에 상당히 무거웠다"며 "새 제복을 입으면서는 그런 무게감과 불편함은 내려놓으시고 역사를 위해 희생한 데 대한 자랑스러움과 자부심만 느끼시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제복이 봄·여름용이어서 가을·겨울용 명예 제복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동복 제작에도 흔쾌히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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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