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명단 공개” 외치던 민주 의원들, 공개되자 일제히 침묵

친야(親野) 성향 언론 ‘더탐사’와 ‘민들레’가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실명이 담긴 명단을 공개한 가운데, 정작 명단 공개를 요구해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무단 공개의 경우 ‘2차 가해’ 등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온라인 매체 뒤에 숨어 방조한 민주당도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이 11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 추진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탐사와 민들레는 이날 오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은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양해를 구한다”면서도 공개를 강행했다. 유가족 동의 없이 희생자 이름이 공개되자 정치권과 학계에서 “참담하다”(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게 정의인가요”(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하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부터 ‘희생자 명단 공개가 추모’라 주장하거나 필요하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던 민주당 의원들은 정작 명단이 공개되자 관련 언급을 삼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하냐”며 사망자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제주 제주시을) 역시 페이스북에서 일부 희생자들의 사연이 담긴 워싱턴포스트(WP) 기사를 공유하며 “그래서 보여주지 않으려 했구나” “희생자 얼굴을 보니 이제서야 현실감이 생기고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처럼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고 했다. 7일 국회에서는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전체 희생자 명단, 사진, 프로필을 확보해 당 차원의 발표를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민주연구원 이연희 부원장 텔레그램 메시지(문진석 전략기획위원장 수신)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14일 현재 야당 의원들 누구하나 명단을 공유하거나 관련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윤석열 정부 책임을 부각하기 위해 ‘희생자 명단 공개’를 요구해왔지만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어 주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날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유족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무단공개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도 민들레, 더탐사의 명단 공개 관련 “민주당 의원들은 여기에 엮여서는 안 된다”는 야당 지지자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내 사고수습 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유족 일부와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재명 대표가) 진정한 추모가 되기 위해 사진, 위패가 있는 상태가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유가족 동의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며 “동의 없이 이런 명단들이 공개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요구한 명단 공개는 유가족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거리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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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