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 광부가 전한 '221시간'…기적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
221시간 만에 무너진 광산 갱도에서 구조된 광부 박정하(64)씨는 “내가 살아나온 것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희망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입원 치료 중 가족으로부터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소식을 전해 듣고서다.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박씨는 5일 “(구조된 후) 여러 사람에게 최근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고 들었다”며 “이런 가운데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구조 지시를 하는 등 너무나 많은 분과 정부 기관에서 도와줘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데 감사를 드리고 응원해 준 많은 분들한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이 광산에서 채굴 작업을 하던 작업반장 박씨와 보조작업자 A씨(56)가 갱도가 무너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함께 작업하던 7명 중 2명은 이날 오후 8시쯤 자력으로 탈출했고 3명은 같은 날 오후 11시쯤 업체 측에서 구조했다. 업체 측은 나머지 2명의 구조가 어려워지자 하루 뒤인 27일 오전 119에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직후 작업자를 구출하기 위해 제2 수직갱도 지하 140m까지 내려간 뒤 수평으로 진입로를 뚫는 작업과 매몰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땅 위에서 수직으로 시추기를 뚫어 내려가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 중 수평으로 진입로를 뚫는 작업이 성공해 매몰됐던 작업자들은 고립 221시간 만인 지난 4일 오후 11시쯤 갱도 밖으로 나왔다.
박씨 아들(42)은 “아버지 건강 상태는 지난 열흘간 거의 음식을 못 드신 것 치고는 굉장히 좋다고 한다”며 “주치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커피믹스가 상당히 도움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방종효 과장(주치의)은 병원 1층에서 브리핑을 열고 “커피믹스를 30봉지 처음에 갖고 계셨는데 구조가 이렇게 늦게 될지 모르고 3일에 걸쳐서 나눠서 식사 대용으로 드셨다고 한다”며 “그게 아마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된 거 같다”고 했다.
박씨는 사고 충격이 컸던 만큼 광산에서 다시 일하기 힘든 상태다. 박씨 아들은 “아버지가 ‘다시는 광부 일을 하기 싫다. 그쪽으로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 구조됐을 때 시간 감각이 없으신 것도 정신적 충격으로 착각하신 것 같다. 지금은 얼마나 갇혀 계셨는지 어느 정도 가늠하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박씨 아들은 아버지가 고립된 동안 수차례 탈출 시도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처음에 고립되고 사흘 정도는 갱도 내부를 돌아다니며 탈출구가 있는지 찾아봤다. 모든 길이 막혔다는 걸 알자 A씨와 함께 괭이를 들고 벽을 뚫으려고 시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10m 정도 벽을 뚫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멍 정도를 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내부에서 벽을 뚫기 위해 발파 시도도 했다고 한다. 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갱도에 들어갔던 다른 작업자도 고립돼 있을 가능성 때문에 발파를 시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갖고 있던 화약을 이용해 발파를 시도했다”고 했다. 발파 시도는 암석 일부만 떨어져 나가는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결국 탈출에 실패한 박씨와 A씨는 주변에 있던 비닐로 천막을 만들어 바람을 막아주는 공간을 만들고 체온 유지를 위해 모닥불도 피우며 구조를 기다렸다. 이들은 갱도 내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마시고 작업 전 챙겨갔던 믹스커피 30봉지를 조금씩 섭취하면서 버텼다고 한다.
가끔 바깥에서 들리는 발파음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구조 직전인 열흘째 헤드 랜턴 배터리까지 바닥나자 박씨도 절망감을 느꼈다. 박씨 아들은 “아버지가 B씨를 다독이며 열흘간 잘 계시다가 랜턴이 꺼지니까 두려움을 느끼고 A씨에게 ‘이제 좀 힘들 것 같다. 포기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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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