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적폐는 청산하는것이 아니라 없어져야 하는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서면조사를 통보한것에 대해서 또 다시 정국이 요동치며 ‘내로남불’, ‘적폐청산’이라는 단어가 각 언론마다 언급되고 있다.

‘적폐’라는 낯선 언어를 정치권에 처음 유입한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지금은 의미가 산산조각 난 ‘원칙과 신뢰’를 현판으로 내걸고 4대 부문 개혁에 시동을 걸었을 때 바로 그 '적폐청산'이 출현했다. 적폐 청산의 대상은 무차별로 확장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주술적 축문을 낳았고, 급기야 영혼의 영역에도 뻗쳤다. ‘비정상적 혼’의 적폐 청산이 국정교과서의 출생 비밀이다. 혼에 낀 적폐를 청산한다, 마치 일제 말기 심전(心田) 개발이나 국민정신 총동원처럼 무서운 얘기다.

박근혜는 역사의 전선에서 물러갔다. 그런데 그가 남긴 언어가 정치권의 혼을 지배하고 있음은 이상한 일이다. 너도나도 적폐 청산을 외친다. 가장 즐겨 사용했던 정치인이 문재인이다. 대세론의 주인공인 그는 ‘적폐’를 입에 달고 살았다. 권력 적폐, 안보 적폐, 재벌 적폐, 이런 식이다. 청와대·검찰·국정원 등 권력 적폐 청산 3대 방안을 내놓더니 재벌 적폐 청산 3대 원칙을 선언했다. 안보 적폐는 병역기피, 방산 비리, 안보 무능, 종북몰이 등 네 가지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는 뿌리뽑아야 하며 적폐에 연관된 세력과 어떻게 손을 잡는가”라고 정의롭게 말했다. 그런데 안보 무능을 적폐로 지목했으면서 사드(THAAD)에 대해선 가부(可否)를 답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물리면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적폐를 청산하기 이전에 청산해야 할 것은 적폐 청산이라는 언어의 소멸이다. 그 속에 고착된 적의의 정치고, 홀로 정의롭다는 척사론적 의식이다. 사회는 생각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군집, 정치는 그런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포용적 기술이다.

집권 초기 80%에 달하는 절대적 지지를 얻고 국회를 독점하다시피 질주하던 문재인 정권의 실패도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됐음을 상기할 일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 안에 담긴 ‘통합과 공존’ 선언 때문이었다. 관용과 소통의 정치문화가 처음으로 싹을 틔우리란 부푼 희망이 무너지기까지는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초기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 중 제1호가 ‘적폐청산’ 아니었던가? 적폐청산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 두 명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면서 과거는 청산된 듯 보였지만 보수층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정치보복’이라는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절반의 성공에서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적폐청산의 큰 줄기인 검찰개혁은 조국-추미애 두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실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문 정권에서 모든 사안은 진보와 보수, 내 편 네 편의 격렬한 싸움으로 치환됐고, 이 과정에서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70%의 국민은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으로 몰리거나 국외자로 버려졌다. 그 갈라치기의 수단으로 남용된 ‘내로남불’은 신영어단어(Naeronambul)로도 쓰이는 부끄러운 상징어가 됐다

나아가 더 부연하자면 문 정권의 실패한 언어인 적폐청산을 윤 대통령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 말기 바란다. 윤대통령이 대선 유세 때 언급했던 “국민 약탈, 무도한 행태, 독재와 전제, 망상, 기만, 씻을 수 없는 죄….” 이것은 선거때마다 나왔던 그야말로 상투적인 단어일뿐이다.
적폐청산은 그 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역대 전 정부에서 새 정부로 정권이 바뀌게 되면 어김없이 진행되어 왔다. 진정으로 적폐를 청산하는 길은 단 하나다. 스스로 더는 적폐를 쌓지 않는 것이다. 전 정권의 적폐청산이 아닌, 적대와 배제의 정치문화를 거두고 통합과 협치, 공정과 상식을 세우는 것이 정치교체의 핵심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한마디 하겠다. 죄가 없으면 당당하게, 국가 기관 질문에 답을 하면 될 일이다. 그것도 검찰에서 소환통보한것도 아니고 감사원 서면통보에 대노하며 분노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 보통 사람들 하는 말에 ‘뭐 뀐 놈이 성질낸다’는 비유가 있다. 딱 그 짝이다. 잘못이 없는데 왜 분노를 하며, 어째서 그것이 무례가 되는가? 본인이 당당하면 조사에 응하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불타죽은 사건에 대해 의혹을 규명하고자 하는 감사원 조사에 응하기는커녕 ‘전 대통령 모욕 의도’ ‘정치적 탄압’ 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거대야당뒤에 숨는건 민주당 새로운 전통인것인가.


▲이경주 뉴스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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