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 내고도 밥 먹기 미안하다" 축의금에 등골 휘는 MZ들
“지난 몇 달은 축의금 내느라 허덕인 기억밖에 없어요. 결혼식 가려고 부모님께 돈을 빌릴 정도였으니까요.”
사회초년생 장모(26)씨는 지난 석 달 사이 축의금으로만 80만원을 썼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며 격주에 한 번꼴로 결혼식에 갔기 때문이다. 장씨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결혼식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월급은 많지도 않은데 물가는 올랐고, 생활비 쓰기도 빡빡한데 축의금까지 내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다.
고물가로 생활비가 증가한 사회초년생들이 ‘축하’의 의미를 담는 축의금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가 물러나자 결혼식은 느는데, 지갑 사정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물가 상승은 기존에 내던 축의금 액수가 초라해 보인다는 점이다. ‘축의금 인플레이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주로 20~30대인 사회초년생들은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 결혼 소식을 반기기만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김모(26)씨는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내 코인은 마이너스 70%가 됐다. 그런데 결혼식은 많아져 축의금 내느라 등골이 휜다”며 “청첩장을 받으면 축하한다는 말보다 ‘또 돈 나가겠구나’ 걱정부터 든다”고 했다. 직장인 조모(27)씨는 “축의금 인플레이션이 심해져서 요새는 10만원이 기본이다”며 “결혼식을 다녀오면 잔고가 훅훅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모(33)씨는 “생활비를 아끼려고 커피도 안 먹지만, 결혼식은 관혼상제인데 안 갈 수가 없다”며 “결혼식도 밥값, 꽃값 같은 비용이 늘었을 텐데 10만원을 내도 친구한테 민폐일까 미안한 마음에 걱정된다”고 했다.
축의금 부담에 계좌로 돈만 보내고 예식은 참석하지 않는 ‘결혼식 노쇼(no-show‧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생겼다. 20대 직장인 최모씨는 “적당히 아는 사이면 5만원만 계좌로 보내고 만다. 결혼식장에 가서 밥을 먹으면 최소 10만원은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토로했다.
청첩장을 전달하는 2030 신랑‧신부도 하객들의 반응을 안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신부 박모(27)씨는 “청첩장을 주는 게 돈을 달라는 것처럼 비칠까 봐 걱정된다. 예식장 밥값만 7만원이 넘어서 축의금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는데 난감하다”고 했다. 얼마 전 결혼한 성모(27)씨는 “결혼 자체가 고통이다. 어쨌든 내 잔칫날인데 마음껏 쓰지도 초대하지도 못하는 게 맘이 안 좋았다”며 “축의금 문제로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고물가의 영향으로 결혼식 비용 또한 증가할 거라는 게 예식업계의 예상이다. 서울 시내 한 예식장 관계자는 “호텔을 제외한 일반 예식장의 식사 비용은 대부분 4만~7만 원대로 형성돼있지만, 고물가의 영향으로 식대 같은 비용이 지금보다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는 축의금을 둘러싼 2030세대의 고민은 고물가로 일어난 변화라고 짚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고물가 시대에는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사회에 나간 지 얼마 안 된 청년세대도 마찬가지”라며 “여력이 없으니까 축의금을 내는 것도 부담스럽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결혼식 참석이 부담이 되는 때가 왔지만, 상호 간의 보상이자 사회 평판을 관리할 수 있는 축의금 문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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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