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도서' 폐기 한강 소설, 노벨문학상 받고도 '권장도서' 안 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지난해 벌어진 경기도교육청의 ‘도서 폐기 사건’이 재조명 받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은 보수단체의 민원으로 촉발됐고, 결과적으로 총 2500여권의 도서가 폐기 처분됐다. 폐기된 도서 가운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포함돼 있다.


▲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왼쪽)와 저자 한강(오른쪽).

11일 경기도교육청 시민자율게시판에는 한강 작가의 작품 폐기 관련 민원들이 잇따랐다.

한 시민은 “노벨문학상 책을 폐기한 경기도 교육청의 무식하고 무지한 처사를 보니 저런 교육청아래 내 자식을 맏기고 있다니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항의글을 썼다. 또다른 시민은 “여기가 노벨문학상 ‘소년이 온다’를 유해도서로 지정한 교육청이냐”며 “대단한 교육감을 뽑아놓으셨다”며 일침을 가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조속히 초·중·고 도서관에 다시 배치하고,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경기교육청은 논란이 불거지자 이날 별도의 입장을 내고 “경기도교육청은 특정 도서를 유해도서로 지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경기교육청은 “지난해 11월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서는 학교도서관운영위 협의에 따라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면서 “그 결과 각급 학교에서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를 통해 폐기 도서를 선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기도교육청이 특정도서를 유해 도서로 지정하고 폐기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도교육청의 해명이 군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시 공문을 받았던 사서 교사들은 교육청의 공문이 도서를 폐기하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는 입장이다. 경기지역 한 사서 교사는 “공문이 접수된 이후 학교장으로부터 ‘그냥 한 권 정도만 폐기하면 안되겠느냐’라는 말을 들었다”며 “공문 자체가 압박이었던 셈”이라고 했다.

박도현 전교조 경기지부 사무처장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책들이 폐기됐지만, 그중에서 실제 유해도서로 분류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폐기에 명확한 기준조차 없었던 것”이라며 “폐기된 도서를 복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교육청은 ‘각 학교에서 결정한 일’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11일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경기도 학교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란 명목으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2500여권이 폐기처리된 일에 대해 "교육청은 특정도서를 유해도서로 지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지난해 11월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협의에 따라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한 바 있으며, 그 결과 각급 학교에서는 운영위를 통해 폐기도서를 선정한 것"이라며 "이 가운데 한강 작가의 작품은 1개 학교에서 2권만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명했다.

당시 교육청은 보수성향 학부모단체가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며 개최한 기자회견 관련 기사 링크를 공문에 첨부했다. 그 결과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독일에서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받았던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 영국 교육전문지에서 올해의 지식상을 받은 '10대들을 위한 성교육' 등이 폐기됐다.

이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폐기 논란이 재점화됐으며, 일부 누리꾼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조속히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다시 배치하고, 청소년들의 권장 도서로 지정하여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민원을 경기도교육청에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한강 작가의 소설을 권장도서로 지정하거나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하지도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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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