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野단독처리 채상병 특검법에 "엄중 대응"…거부권 시사

대통령실이 야당이 국회에서 단독 처리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특검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미 수사 중인 사건인데다가, 여야 합의 없는 특검 추진이라는 점에서 일방적인 '입법 폭주'라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영수회담 이후 기대된 '협치' 정국은 급속하게 냉각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지만 정치적 부담도 안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야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중 수사로 인한 사법 절차 붕괴, 두 번째는 민주당의 입법 강행 저지 등이다.


먼저 대통령실은 채상병특검법이 이중 수사로 귀결된다며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실은 야당이 강행한 특검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수사 중인 상황에서 특검 강행은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사고의 원인과 과정 조사, 책임자 처벌은 당연하지만 수사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미흡할 경우에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취지에 맞다는 게 대통령실 입장이다. 민주당이 설치한 공수처를 믿지 못하고 특검부터 추진하는 건 '자기 부정'이라는 비판 의식도 깔려 있다. 아울러 현재까지 13차례 특검 도입 사례 중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는 점도 강경 대응의 이유로 자리하고 있다.

홍철호 정무수석은 이날 오전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사법 절차에 상당히 어긋나는 입법 폭거"라며 "지금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 절차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야 합법적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을 초월해서, 여야 합의도 없고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덜커덕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일방적 입법 강행을 막을 수 있는 건 대통령 뿐이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정진석 비서실장은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며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입법 폭주"라고 부르며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협치 첫 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강행한 것은 여야가 힘을 합쳐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의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동시에 민주당을 향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과의 회동, 이태원특별법 합의 처리 등으로 신뢰가 쌓였다고 믿은 관계에 다시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법안 상정과 곧바로 이어진 처리를 놓고 내부에서는 참모들 사이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실제 2일 오전까지 대통령실 참모들은 오는 22일 채상병특검법이 상정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여당 역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상태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채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에 대한 규탄대회를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며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함으로써 협치의 희망을 국민에게 드리고자 노력했지만, 오늘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입법 폭주하고 김진표 국회의장은 입법 폭주에 가담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이번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재의요구가 이뤄진 10번째 법안이 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방송 3법',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9개 법안에 대해 5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그만큼 거부권 행사는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는 안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MBC 라디오에 출연해 "이것은 오만한 권력이 국민과 싸우겠다는 것으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며 "전국민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수처에서 강도 높게 수사 중인 사안을 두고 정쟁을 부추긴 건 오히려 야당"이라며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이 아닌 정쟁 목적의 특검은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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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