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복수’ 시작됐나…文-明 내전 조짐

▲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023년 5월10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함께 이동하는 모습

치열했던 전투가 끝나자 안개가 걷히고 또 다른 전선(戰線)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상황 얘기다. 이낙연 전 대표와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 등 이재명 대표와 공개적으로 각을 세우던 일부 비명(非이재명)계가 탈당했지만 당내 안정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비명계와 다투던 친명계의 총구가 이제 친문(親문재인)계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아직은 일방적인 모양새지만, 상대마저 반격에 나선다면 정면충돌은 불가피하다. 총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신구(新舊) 권력의 내전이 벌어진다면 그 여파는 가늠하기 어렵다. '문-명(문재인-이재명) 내전'은 결국 발발할까.


2017년 대선 경선부터 시작된 악연

한동안 잠잠했으나 야권 내에선 친명과 친문의 충돌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화약고로 보는 관측이 많았다. 한때는 치열했던, 오랜 전선이 잠시 감춰져있을 뿐이라는 것. 갈등의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5월로 앞당겨진 제19대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이재명 두 사람이 경쟁자로 만났다. 당시 비주류 중 비주류였던 이재명 후보는 대세 중 대세였던 문재인 후보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문 후보를 '재벌 편향적 후보'라고 규정했고 "기득권자들과 재벌의 사외이사 등이 문 후보 주변에 대규모로 몰린다. 기득권 대연정"이라고 몰아세웠다.

문 전 대통령이 경선에 이어 대선에서 승리하며 정권을 잡은 이후로도 양측의 갈등은 한동안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 경찰과 검찰이 이 대표(당시 경기지사)의 배우자 김혜경씨 의혹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자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 아들의 취업 특혜 의혹을 직접 거론하는 등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경선 때의 기억으로 이 대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문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은 그를 연일 비난하고 출당 조치까지 요구했다. 어찌 보면 지금과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당시는 친문의 총구가 일제히 이 대표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재명 대표가 대선후보에 이어 당권을 잡으며 주류로 자리매김하자 상황은 뒤집혔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 강성 지지자를 비롯한 친명의 숙적으로 여겨졌다. 실제 친명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 때를 탄압받던 시절로 기억하기도 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정치인은 최근 친문을 향한 친명의 공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물과 기름이다. 섞일 수 없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을 때리며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친문에 대한 이 대표와 친명의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된 셈이다."

게다가 최근 친명의 심기를 건드린 건 탈당파와 함께 행동하던 윤영찬 의원의 잔류가 결정적이라는 관측이다.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과 함께 비명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으로 활동하던 윤 의원은 다른 의원들이 탈당을 결정할 때 막판에 마음을 돌렸다. 윤 의원 잔류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민정·윤건영 의원 등 친문 인사들의 만류가 크게 작용한 사실이 알려지자 친명 측은 크게 반발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국민소통수석을 지냈다. 친명 조직인 민주당혁신행동은 "청와대 권력 핵심에서 친하게 지낸 사이라고 어떤 잘못도 눈감아주고 비호하는 것이 공정하고 상식적인 일인지 묻고 싶다"며 친문계를 저격했다.


이 대표가 직접 '反文' 이언주에 복당 제안?

현재 친문에 대한 친명의 견제는 전방위적으로 발동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우선 이언주 전 의원 복당 문제가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 전 의원은 과거 친문 주류에 반발해 탈당한 후 문재인 정부와 줄곧 각을 세워왔다. 그런 이 전 의원에 대한 복당이 최근 추진됐고, 이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로부터 직접 복당 제안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친문계에선 즉각 반발했고, 친명의 '친문 축출' 시도의 일환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성호 의원이 "내가 제안한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여전히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친문 인사들에 대한 친명 인사들의 자객 출마·공천 논란은 당내 최대 이슈다. 친명 원외 조직 등이 노영민·임종석·이인영 등 친문계 인사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불출마를 요구하는 데 이어 친명 인사들이 잇따라 친문 현역 의원 지역구 혹은 친문 인사 출마 지역에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친명계로 비례대표인 이수진 의원은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포기한 지 하루 만에 윤영찬 의원 지역구인 경기 성남 중원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에 배신과 분열의 상처를 주면서, 민주당 이름으로 출마하겠다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이재명 대표의 심장'을 뺏길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호소드린다"고 했다. 비명계이자 친문인 윤 의원을 정면 겨냥한 것이다.

이재명 당대표실 소속이던 모경종 차장은 친문 성향의 재선 신동근 의원 지역구인 인천 서구을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모 차장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5급 청년비서관으로 채용해 최근까지 이 대표를 보좌했다. 친문 재선 강병원 의원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는 친명 원외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김우영 상임대표가,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의원 지역인 충북 청주 흥덕엔 이재명 지도부에서 임명된 이연희 민주연구원 상근부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이 부원장은 서울 동작을 출마로 당 검증 과정을 통과했으나 최근 출마 지역을 바꿨다.

친문 핵심 인사들도 예외는 없었다. 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른바 '3철' 중 한 명인 3선 전해철 의원의 지역구인 안산시 상록갑에는 친명계 원외인사로 분류되는 양문석 전 통영·고성 지역위원장이, 문재인 정부 때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4선 홍영표 의원의 인천 부평을엔 친명계 초선 비례인 이동주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이 출마 선언을 한 서울 중·성동갑에는 친명 중에서도 '찐(진짜)명'으로 꼽히는 조상호 당 법률위 부위원장 투입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성동갑은 현역인 홍익표 원내대표가 서초을로 출마 지역을 옮기면서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이 밖에도 비명계 혹은 계파색이 옅은 의원들 지역에서도 친명 인사들의 출마가 거론된다. 박용진 의원의 서울 강북을엔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이, 기동민 의원의 서울 성북을에는 김성진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수석대변인이, 최종윤 의원의 경기 하남엔 민병선 전 대변인이 출마자로 거론된다.


"문 전 대통령, 직접 나설 생각 없어"

1월3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표는 자객공천 논란 등으로 인해 분열 양상이 나오는 것에 대해 "보시는 것처럼 역대 어떤 선거 공천 과정에 비교해 보더라도 오히려 갈등 정도나 분열 정도는 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경쟁에서 갈등이 없을 순 없다"면서 "국민들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춰서 공천관리위원회가 당헌·당규,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따라서 공정하게 합리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친문계 등 비명계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KBS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객출마 논란에 대해 "누가 봐도 이재명 대표한테 보고 내지는 상의 없이 했겠느냐, 이런 생각이 든다"며 "이 대표가 빨리 정무적 기능을 작동해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요직에 근무했던 한 친문계 인사도 시사저널에 "별다른 연고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지역을 옮겨 출마한다든가 친문계 인사들에게 불출마를 요구한다든가 하는 상황들은 노골적이지 않나.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며 "본인 뜻이 반영된 게 아니라면 강성 지지자, 친명들에 대해 이 대표가 자제 요구라든가 한마디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문과 친명의 갈등 양상에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갈등이 반복되고 공천에서 친문 학살 등 잡음이 심할 경우 문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 대표와 맞서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앞서의 친문계 인사는 "문 전 대통령은 직접 나설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이 대표와 각을 세우거나 할 생각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이 대표와 만나 비공식적으로는 정중히 공정한 경선 등을 요청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친문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이 대표와 갈등을 빚는 부분에 대해선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문재인 정부 이후 친문계가 여러 갈래로 분화되고 약화됐으며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현재 당내엔 친문이면서도 지금은 친명으로 분류되는 인사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추미애 전 장관은 문 전 대통령은 물론 친문 인사들에 대해서도 연일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당내에서 합리적으로 평가되는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의 입과 거취를 주목하기도 한다. 이들이 친명과 비명의 중재자, 혹은 비명계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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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