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케어 자료제출 '강요 받았다'?…건보공단 국감 파행
보장성 강화에 초점을 뒀던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18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도마에 오른 가운데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자료 제출을 두고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이 야당 의원으로부터 국감자료를 급하게 낼 것을 '강요'받았다는 표현을 쓰면서, 보건복지위원회의 국감은 시작되자마자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건보공단이 의원실에 제출한 '뇌·뇌혈관 MRI(자기공명영상장치) 급여확대에 따른 효과' 보고서를 들어 '문(文)케어'가 불필요한 검사 남발로 건보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당정의 주장을 반박했다.
강 의원은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뇌혈관 MRI 촬영 환자 수가 증가한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급여 확대 이후 뇌졸중의 조기발견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급여기준 변경에 따라 기간을 나눠보니, (뇌졸중) 조기 발견율이 10%p 정도 상승했다"며 "최소한 같은 기간 2만 2천여 명의 뇌졸중 환자를 (더) 조기에 발견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중증뇌질환 진단환자에게만 적용했던 건보 급여를 뇌질환이 있거나 이를 의심할 만한 두통·어지럼증 등 신경학적 검사를 실시한 경우로 넓혔더니, 뇌졸중 조기 인지율이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취지다.
강 의원은 "MRI 검사비용 부담 문턱이 낮아지면서 취약계층 등의 의료이용 접근성이 향상되고, 조기에 질환을 진단함으로써 중증 진행을 예방해 의료비 부담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럼 추가적 연구를 통해 건보 보장성 강화정책이 국민 건강과 건보재정에 각각 미치는 효과를 정말로 '과학적으로' 검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의하시는지, 또 향후 (관련)계획을 말씀해 달라"고 질의했다.
그러자 정 이사장은 "그 자료가 나가고 나서 제가 검토했는데, 그 부분은 추가연구가 사실 많이 돼야 할 부분"이라고 답변했다. 전(前) 정부의 건보 정책이 적절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엔 근거가 다소 빈약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어 "(자료에) 나와있는 '일시적 허혈 상태'라는 것은 조기발견이란 개념과는 임상적으로 다르다. 저희 연구원에 의사가 없다 보니 개념을 잘못 잡았던 부분이라 양해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실제로 전후를 비교해 보면 병(유병률)이 그렇게 많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라며 "검사(통계)를 보면 굉장히 많은 병이 더 발견된 것 같아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검사에 급여로 들어갔던 부분에 대한 것"이라고도 했다. 피감기관에서 제출한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해당 기관장이 나서서 한 셈이다.
이에 강 의원이 "그럼 개념을 잘못 적용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감을 진행하라고 의원실에 제출했다는 것이냐"라고 묻자, 정 이사장은 "그날 자료를 굉장히 급하게 요청하셔서 제가 자료 보완을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태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중간에 개입한 신동근 복지위원장이 오후 국감까지 보완 제출이 가능한지 질문했지만, "이렇게 짧게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이사장은 이어 "이 자료는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저는 담당자에게)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출을 상당히 강요를 받았기 때문에,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야당 의원들은 '강요'라는 단어에 일제히 반발했다. 상임위 국감에 임하는 기관장의 태도로 보기엔 상당히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신 위원장 역시 "국감은 국회법에 따라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국가 기밀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면 (피감기관이 상임위 요청에 따라) 주게 돼있는 것"이라며 "의원실의 요청을 '강요'라고 하는 게 제대로 된 태도인가"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도 "문재인 케어가 포퓰리즘적 성격이 있다면 분명 (윤석열) 정부가 감사원에서 감사했을 때 그 증거자료가 있을 것이고 그걸 제출하라 한 것"이라며 "복지부가 분명히 검토한 게 있기 때문에 (해당 정책의) 낭비성을 증명하는 자료를 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이사장 말씀을 들어보면 국감장에서 내라고 하니 급하게 자료를 만들어서 냈다는 것인가. 너무 황당하다"라며 "함부로, 아무 근거도 없이 포퓰리즘이라 한 건가"라고 반문했다.
같은 당 고영인 의원도 "우리가 산하기관에 여러 자료를 요청하는 것은 정당한 의무다. 무슨 생색을 내듯이 해서는 안 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주면 되는 것"이라며 "이것은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이사장의 사과에도 야당의 항의가 계속되면서 국감은 20여 분간 정회됐다가 재개됐다.
정 이사장은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는 신 위원장의 요청에 "강 의원께 사과드린다"면서도 "제가 '강요'라고 말씀드린 것은 '강한 요청'이었다는 뜻이었다. 그 단어가 다르게 해석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밝혀 빈축을 샀다.
이날 국감에선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인 '의대정원 증원'도 질의 안건에 올랐다. 정부는 오는 19일 '지방 필수의료 확충' 등을 골자로 하는 관련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 이사장은 "(의사)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확실하다. 예전에 미국이 의사가 모자라서 (의사를) 수입했는데 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났다"며 의대정원 확대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의대정원 증원이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늘리는 '낙수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미미하다고 봐야 한다"며 "(피부과 등 비필수 진료과 의사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답했다. '건보공단의 주머니'도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최근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의대정원 확대 여부"라며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25일 예정된 종합국감에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강 의원은 "지방에 있는 환자들은 몇 달 전 서울 큰 병원에 예약을 걸어야 진료다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정권이 4번 바뀌는 동안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카르텔 최상위에 앉아있는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강경대응을 하고, 정부가 그에 굴복했기 때문"이라며 "국회는 당사자인 의협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불러 의사들의 입장을 확인하고, 국민이 바라는 의료환경과 의사 수 확보방안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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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