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만에"…울먹인 원폭 피해 동포들, 약속지킨 尹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추석 당일인 29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 동포들과 함께 오찬을 갖고 "한일 관계를 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우리 동포를 잘 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원폭 피해 동포 초청 오찬에서 "정부가 여러분을 이렇게 모시기까지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원폭 피해 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원폭 피해 동포 85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 행사를 열었다. 이번 오찬은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일본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 약속했던 것을 지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윤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 당시 현지에서 피해자들과 만나 '고국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날 정부에서는 이기철 재외동포청장이, 여당에서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대통령실에서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 이충면 외교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尹대통령 "동포 아픔,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

윤 대통령은 "수만 명의 한국인들이 원폭 피해로 생명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며 "식민지 시절, 타향살이를 하며 입은 피해였기에 그 슬픔과 고통이 더욱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도록 불편했던 한일 관계가 여러분의 삶을 힘들게 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며 "정부는 동포 여러분의 아픔을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한이 그동안 여러분이 겪은 슬픔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저는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기시다 총리와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은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을 다짐했다"고 했다

또 "우리 정부는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협력하면서 역내,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증진해 나갈 것"이라며 "여러분의 아픔과 희생에 대한 위로는 오늘의 이 자리로만 그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을 통해 여러분과 후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추석을 맞아 전통 음식과 공연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고국에서 한가위 명절을 즐기는 그런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권준오 원폭피해대책위원장 "한일 새 시대, 더 좋은 환경서 살 수 있다는 희망"

이날 참석 동포들을 대표해 답사에 나선 권준오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윤 대통령 부부가) 기시다 총리 내외와 함께 위령비를 공동참배한 사실은 일본에서 대서특필 되었고 주변 일본인들도 한일관계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는 반응을 보여 이제는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유영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사무국장은 "78년 동안 소외돼 있던 원폭 피해자들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언니 두 명과 부모님이 피해자이지만 피해자라고 말하지 못하고 숨어서 살고 있었는데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화자 전 민단부인회 히로시마현 본부 부회장은 "4살 때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다"며 "비록 4살이었지만 당시 기억이 선명하다. 피폭 1세대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는데 이런 자리가 영광스럽다"며 울먹였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오찬 메뉴는 삼색전, 전통잡채, 전복찜, 떡갈비 구이, 소고기 무국, 약과, 송편, 식혜 등 한상차림으로 동포들이 고국의 추석 명절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며 "또한 동포들은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의 가야금 3중주, 부채춤 그리고 아리랑 등 경기민요로 구성된 추석 풍류 공연과 바리톤 김동규의 그리운 금강산 등의 문화공연을 감상하며 고국의 정취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행사장을 떠나기 전 동포들에게 "한국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모국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고향의 가을 정취도 즐기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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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