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돕지 않은 죄? 설자리 잃어가는 비명계
지난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코너에 몰린 모양새다. 당의 주류인 친명(친이재명)계가 비명계 의원들을 직접 비판하기 시작한 가운데,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겨냥한 '낙선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도 '순수 친명계'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의 체포안이 가결된 후 비명계 의원들을 상대로 '폭탄 문자'가 쇄도하고 있다. 이 대표 지지층은 이른바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속어) 블랙리스트'를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 게시하고 이들의 개인 연락처와 사무실 전화번호, 주소까지 공유하고 있다.
한 비명계 의원은 "심한 욕설이 섞인 문자와 전화가 이어지고 있어 아예 (문자 메시지 등은)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 가결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엔 "당분간 관련 입장은 밝히지 않을 계획"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비명계 의원들을 겨냥한 '살인 예고글'까지 게시되며 논란이 확산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오후 8시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무조건 가결표 던진 의원리스트'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는데, 게시자는 당 소속 의원 14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집에 있는 스나이퍼 라이플(소총)을 찾아봐야겠다"는 등 테러를 암시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IP 주소 등을 토대로 수사에 나서 23일 오전 8시25분께 군포 소재 한 숙박업소에서 게시자 A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A씨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이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협박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원뿐 아니라 당내 친명계 의원들도 이른바 '가결파'로 의심되는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원망 섞인 비판을 가하는 모양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22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두고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 먹었 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이 자기 당대표를 팔아먹었다"며 "적과의 동침"이라고 가결표를 던진 비명계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당심'이 악화되면서 일부 비명계 의원들은 탈당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당 지도부에서도 비명계 의원의 자진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에 따르면, 송갑석 의원은 지난 22일 이 대표에게 지명직 최고위원직의 사의를 표명했다. 송 의원은 당내 대표적인 비명계로, 이 대표가 탕평책의 일환으로 지난 3월 임명했다. 비명계인 고민정 최고위원 역시 당원들의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명계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 전원이 사퇴했다. 조정식 사무총장과 정무직 당직자 전원도 이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당직자들에게 "일단 정상 근무를 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당내 분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이 대표는 23일 단식을 중단했다. 국정 쇄신 및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지 24일 만이다. 이 대표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오는 26일로 예정된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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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