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이해찬 지키려 이재명 버렸나
# 8월 8일 오전 10시 수원지법 204호 법정.
피고(이화영 전 부지사,사진) "변호사 해임은 아내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지금까지 재판을 함께해 온 변호사가 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검찰 "법정 외부 상황으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주 심문을 예정대로 진행해 주십시오. 차라리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서라도 재판을 진행해 주십시오."
변호사 "변호사가 여기 나와 있는데도 마치 유령인 양 국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최근 검찰 진술은 회유와 협박으로 이뤄졌기에 '임의성'이 없습니다."
검찰 "이의 있습니다."
변호사 "제 얘기 아직 안 끝났어요. 들어보세요."
검찰 "이의 제기는 발언 중에도 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님, 변호인 주장이 피고 의사에 부합하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변호사 "그건 피고인이 할 말입니다. 당신이 변호사입니까."
검찰 "당신이라뇨."
변호사 "당신은 하나님에게도 쓰는 말입니다."
재판장 "오늘 재판은 오전에 김성태 대질신문, 오후 안부수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피고, 덕수 측 변호인과 재판을 진행하겠습니까."
피고 "지금까지 재판을 함께 진행해 온 해광 변호사가 출석한 상태에서 다음 기일에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변호사 "피고와 입장 조율을 할 시간을 주십시오."
재판장 "10분간 휴정합니다."
10분 후 재판 속개.
변호사 "지금까지 스마트팜으로 6개월, 대북송금으로 6개월, 1년간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재판 처음 봅니다."
검찰 "변호인은 지금까지 어떤 재판이 이뤄졌는지 모르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고인과도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검찰 조서에 부동의하는 미션을 받고 온 것입니까."
변호사 "미션이라니…."
이화영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증거의견서'와 '재판부 기피신청서' '변호사 사임서'를 속사포처럼 제출하고 곧바로 퇴정했다.
피고인석에는 이화영 전 부지사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재판장이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의견서와 재판부 기피신청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 전 부지사는 "(증거의견서) 내용을 알지 못하며 (재판부) 기피신청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이 전 부지사 뒷줄에 앉아 있던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 변호인에게 "이화영 피고인 변호인이 퇴정해 더 이상 재판 진행이 어렵다"며 "22일 재판을 속개하겠다"고 다음 기일을 정한 후 폐정했다. 재판부 퇴장 후 법원 직원 안내로 이 전 부지사가 법정을 걸어 나가는 동안 방청석에서는 "힘내라" "화이팅"을 외쳤다.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이날 재판이 주목받은 이유는 쌍방울 측에서 스마트팜 대납 비용 500만 달러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방북 명목 등으로 북한에 보낸 300만 달러 대북송금 사실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이 전 부지사에게 보고받아 알고 있었는지가 법정 증언으로 확인되느냐 하는 것 때문이었다.
회유·협박 때문 vs 진실 말한 것
이 전 부지사는 한동안 대북송금은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위해 독자적으로 진행한 것일 뿐, 경기도나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부지사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을 도와달라"고 김성태 쌍방울 회장에게 부탁했고, "그 사실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그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쌍방울 측 대북송금과 관련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다.
쌍방울 대북송금과 관련한 이 전 부지사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김성태 전 회장을 통한 검찰의 회유와 협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여권에서는 이 전 부지사가 이제야 진실을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란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은 이 전 부지사 접견 때 "김성태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에게 대북송금 관련 진술을 거부하면, 이재명 2심 재판 때 로비한 것과 김용을 통해 기부한 일, 이해찬·조정식 등의 '광장'(이해찬계 싱크탱크)에 비용을 댔다는 내용을 추가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이 다른 의혹에 대해 '입'을 열겠다고 예고했다는 것.
이 전언이 사실이라면 이 전 부지사로서는 대북송금 관련 진술을 끝까지 거부해 이 대표를 지킬 것이냐, 아니면 김 전 회장의 협박에 굴복해 대북송금 전말에 대해 진술하고, 재판 로비, 김용을 통한 기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광장' 지원에 대한 추가 폭로를 막을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어쨌거나 이 전 부지사는 대북송금과 관련한 기존 태도를 번복했다. 이재명 대표를 제물로 자신의 정치적 주군과 같은 이해찬 전 대표를 지키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뇌물을 제공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측 대북송금에 관여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북송금 관여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추가 기소되더라도 이 전 부지사가 공익 제보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측 대북송금 관련 사실을 인정해 공범으로 추가 기소되더라도 공익 신고로 인정받아 감경 가능성이 있다"며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4조는 공익 신고와 관련해 신고자의 범죄행위가 발견된 경우 신고자에 대한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심의 초점 바뀌어
이화영 전 부지사가 기존 태도를 바꿔 대북송금 관련 진술을 한 또 다른 이유로는 광범위한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조계 한 인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대북송금과 관련한 진실을 검찰에 실토한 이상 이 전 부지사가 끝까지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김 전 회장 협박에 의한 것이든 다른 이유에서든 이 전 부지사가 대북송금 관련 보고를 이재명 대표에게 했다는 검찰 진술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관심의 초점은 이 전 부지사가 아니라 이 대표를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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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