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인이 매수하는 줄 알고 따라 샀는데”… 투자자 혼란 부추기는 CFD
전문투자자 요건 완화로 차액결제거래(CFD) 시장이 매년 확대되면서 CFD가 국내 자본시장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FD를 통해 주식을 매매할 경우 투자 주체가 외국계 증권사로 잡히기 때문에 수급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반대매매가 일어날 경우엔 정보 불투명성으로 인해 주식시장 변동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또 고액 자산가들의 세금 회피 수단으로 쓰일 뿐 아니라 최대주주 지분 불투명성을 높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SG증권 CFD 계좌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작전세력마저 등장하면서 이참에 제도 개선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CFD는 주식·채권 등 실제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일부 증거금만 납입한 뒤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을 이용한 차익만을 목적으로 매매하는 장외파생상품 거래다. 예를 들어 5만원짜리 주식 1만주를 매수하는 투자를 하려면 주식을 직접 매매할 수도 있지만, CFD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CFD 증거금률이 40%라면, 매매대금인 5억원(5만원X1만주)의 40%인 2억원만 있어도 거래가 체결된다. 2억원을 뺀 금액인 3억원은 CFD 계좌가 있는 증권사에서 빌려(레버리지) 주식을 사는 셈이다.
거래가 체결되면 CFD 투자자는 레버리지에 대한 이자 비용을 증권사에 내다가 주가가 오르면 1만주를 처분해 시세 차익을 얻는 구조다. 그러면서도 직접 주식을 보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종 의무에서 면제된다.
CFD를 통한 투자는 전문투자자만 가능한데, 지난 2019년 전문투자자 요건이 완화되면서 CFD 시장은 연간 거래금액 기준 2019년 8조3000억원에서 2021년 70조원 규모로 대폭 성장했다.
24일부터 이틀 연속 삼천리, 서울가스, 다올투자증권 등이 하한가까지 급락했는데, 이 과정에도 CFD가 활용됐다. 일부 세력이 SG증권의 CFD 계좌를 이용해 꾸준히 주식을 매수하다가 어떤 이유인지 포지션을 청산해 한꺼번에 매물이 쏟아진 것이다. 특히 24일은 SG증권 계좌에서 매물이 쏟아진 기업들이 외국인의 순매도 종목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투자자들은 왜 외국인이 대량 매도하는지를 놓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CFD는 국내 투자자의 주문을 받은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 증권사에 매매를 위탁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거래 주문을 넣는 것은 외국계 증권사이기 때문에 외국인에 의한 거래로 분류된다.
한 증권 전문가는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외국인이 갑자기 수십만주를 내다 팔거나 사들이는 것으로 보이면서, 해당 종목에 이슈가 생겨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면서 “특히 외국인이 꾸준히 매수하는 주식을 따라 매수하는 개인투자자가 많은데, 최근엔 CFD로 인한 오해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투자 주체가 정확히 인식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점은 또 있다. 공시 투명성을 저해하고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의 최대주주가 CFD를 통해 사실상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해당 주식은 외국계 증권사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지분 공시 의무를 교묘하게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국내 투자자는 상장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거나 최대주주일 경우 소유주식 비율이 변하면 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지만 피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또 공매도 잔고 보고제도에 따라 개별 투자자는 보유 중인 종목의 공매도 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이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CFD로 공매도했을 경우 이 역시 개인투자자가 아닌 외국계 증권사의 공매도 잔고로 집계돼 개별 보고 의무를 비껴갈 수 있다.
CFD가 세금 회피 수단으로 쓰인다는 지적도 있다. CFD는 자본시장법상 투자성 상품이 아닌 장외 계약으로 분류된다. 이에 주식 관련 양도차익 과세를 회피할 수 있어 고액 자산가들은 세금을 줄이고자 CFD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2021년부터 CFD를 활용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도 11%의 양도소득세율이 적용되고는 있으나 종합소득세 대상이 아니고 대주주 양도세에서도 제외돼 상당한 자산가라면 CFD를 활용하면 세금 회피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CFD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큰 만큼, 반대매매 등이 일어났을 때 시장 변동성이 극도로 커진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제 회피, 공시 회피 등은 장외파생상품 투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면서도 “하지만 CFD의 경우 시장 변동성이 크면 클수록 반대매매가 발생하면서 개인투자자가 입는 피해가 큰데, 이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시장 변동성을 더 악화시키는 등의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스피200 등에 포함된 대형 종목에서 갑자기 반대매매로 인한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 지수가 흔들리는 등 지수 왜곡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CFD 시장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확대됐지만, 아직 당국 차원에서 이를 상시로 관리하지 않고 있어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CFD를 통한 거래는 현재 감독 규정이나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으로 정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거래대금·계좌 수 등 관련 현황을 상시적으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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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