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보다 센 이정근 판결...윤관석·노영민 '판도라 상자' 열렸다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한 사업가로부터 1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사진)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옥곤)는 12일 열린 이 전 부총장의 특가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 선고기일에서 이 전 부총장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하고, 9억 8680만 8700원의 추징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고위 당직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치자금과 공무원, 공공기관의 임직원의 직무에 관한 알선의 대가로 약 10억 원에 이르는 금품을 수수했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며 “그 과정에서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면서 특수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알선 대상을 특정해 미래의 구체적인 처분 내용까지 적시했으며 일부 알선 행위의 실행까지 나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
법원 “증거 인멸 시도, 성찰 없어…엄벌 불가피”
재판부는 그러면서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시도하였고, 공판 과정에서도 대체로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했고 금품 공여자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정당인으로서 공무원에 준하는 고도의 엄결성이 요구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전 부총장은 2019년 12월~2022년 1월 사업가 박모 씨로부터 마스크 사업 인허가와 공공기관 납품 등 편의를 봐준 대가로 9억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21대 총선 출마를 앞두고 2020년 2~4월 불법 정치자금 3억30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도 봤다.
이 전 부총장 측은 그간 재판에서 생일 선물로 가방 등 4000만원 상당을 생일 선물로 받았으며, 나머지는 받은 적이 없거나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앞서 결심 공판에서 재판부에 징역 3년에 3억8000만원의 추징금 명령을 요청했었다.
법원은 이 전 부총장과 박씨 간의 통화 녹음과 박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공소사실 대부분을 사실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금품수수 전후 정황에 관한 박씨 진술은 대체로 객관적 증거와 일치한다”며 “박씨로선 수수한 금품이 차용금 명목이라고 주장해야 민사적으로 반환을 청구하기가 용이한데도 알선 등을 목적으로 금품을 공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이 전 부총장이 박씨가 돈을 주고받으며 이자율 등을 따로 논의하지 않았고 차용증도 쓰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이 돈이 차용금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박씨와 대화 중 이 돈이 차용금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한 적도 있다”며 “피고인이 박씨에게 일부 반환한 돈은 알선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채무 변제 등을 가장해 자금을 돌려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전 부총장은 서울 구룡마을 우선수익권 인수를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청탁한 것을 두고 “비서실장에 직무에 속하지 않은 일”이니 알선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룡마을 우선수익권을 지닌 포스코의 당시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이고 그 주무기관이 보건복지부인 만큼, 정부 부처를 관할하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 거다.
재판부는 ▶모 업체 정부 지원금 배정 청탁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용인스마트 물류단지 실수요 검증 절차 진행 청탁 (노 전 실장) ▶모 사모펀드(PEF) 중기부 모태펀드 출자사업 선정 청탁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검찰이 특가법상 알선수재로 공소를 제기한 일부 혐의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죄를 대신 적용해 유죄 판단했다. 이 전 부총장이 박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뒤에 알선 요청을 받아 대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검찰, ‘전당대회 의혹’에 윤관석 압수수색
이로써 서울 서초갑을 기반으로 수년간 국회의원과 구청장에 도전해 왔던 이 전 부총장의 정치 경력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방대한 양의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한 검찰이 윤관석 의원과 노 전 실장 등 연루된 야권 정치인에 대한 강제수사를 이어나가면서다.
실제로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김영철)는 윤 의원의 자택 등 2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2021년 5월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래구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장이 이 전 부총장을 통해 윤 의원에게 특정 당 대표 후보 지지를 대가로 돈봉투를 건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강 회장이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달라”고 하는 통화 녹음을 입수했고, 실제로 돈이 전달됐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또 이 전 부총장이 한국복합물류 상임감사로 취업하는 과정에서 노 전 실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전 부총장에게 금품을 건넨 사업가 박씨와, 박씨에게서 6000만원을 받은 노웅래 민주당 의원도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