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출신 멀쩡한 사업가도 있다…MZ 없는 '자통' 간첩단 실체
자주통일 민중전위. 줄여서 ‘자통’이라 불리는 간첩단은 올해 초 국가정보원이 공개 수사로 전환하며 실체가 공개됐다. 진보진영에선 “아직도 간첩몰이냐”며 폄하하지만, 검찰은 이들이 “대선 등 정치에 개입하고, 노조에 잠입해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는 등 자유민주 기본질서를 위협했다”고 밝혔다. ‘민중전위’ 같은 낯선 단어를 쓰며 북한과 지령과 보고를 주고받은 혐의를 받는 자통 조직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왜 그랬을까.
자통의 총책임자인 황모씨. 그는 경남 창원에 있는 신발 제조업체 대표다. 이 회사는 1998년 설립됐는데, 황씨가 구속된 뒤에도 정상 운영 중이다. 2005년 기준 매출이 약 10억원이었고, 현재도 온라인상에 소비자들의 제품 후기가 다수 올라오는 등 당시보다 사업 규모가 확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을 수사한 공안당국 관계자는 “황씨가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으로 결핍도 없는 사람이다. 빈곤한 생활에 기반한 간첩 활동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황씨를 포함한 자통 조직원 4명을 구속기소하며 이들이 북한에서 공작금 7000달러(약 900만원)를 수령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2019년 6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입구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뒤, ‘총회장님(김정은 위원장)’께 보내는 결의서를 작성하고 그간의 반정부 투쟁을 보고하며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접선할 때 황씨는 직접 가지 않고 조직원 정모씨를 출국시켰는데, 공항 면세점에서 ‘보헴 시가’ 담배 두 보루를 사서 북한 공작원에게 주며 안부를 전하라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또 정씨에게 “뜨거운 동지애를 확인하며 상대방(공작원)은 김정은의 지침을 받아 대리해서 온다는 사실을 확고히 인식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황씨가 북한으로부터 받은 900만원을 어떻게 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황씨에게 돈 액수는 중요치 않았다는 게 검찰 수사팀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공작금’이라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격려금’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며 “북한 대남공작을 총괄하는 문화교류국에서 내려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격려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은 황씨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북한의 주체사상을 접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재학 때 NL(민족해방계열) 성향의 학생운동을 활발히 한 것으로 파악됐다. 젊은 시절 북한 사상에 경도돼 사회생활 중에도 이적단체에서 활동하는 인사들과 교류하며 간첩단 총책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황씨와 함께 기소된 자통의 다른 조직원도 이른바 ‘SKY’대 출신의 고학벌이다. 캄보디아에서 북한에 충성맹세를 하고 돌아온 정씨는 연세대, 그의 남편 성모씨는 서울대를 나왔다. 성씨도 북한으로부터 지령문을 14차례 수령하고, 보고문을 5차례 올린 혐의 등을 받는다. 부부는 시민단체에 소속돼 빈번한 대외 활동으로 얼굴이 알려진 상태였다.
40~50대인 이들의 나이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구속된 4명의 평균 연령은 54세. 간첩 행위를 할만한 인물이 80년대 초중반 학번 이후 유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북한은 지령문에서 젊은 사람을 포섭하라고 독촉하지만, 20~30대 간첩은 극히 드물다. 예전부터 알던 사람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적행위를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상이 미화된 비슷한 부류 안에서 교류하다보니 결혼 등 가족관계 및 지인으로 얽혔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커뮤니티 자체가 시대 흐름과 무관한 폐쇄 집단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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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