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끝난 날' '美 가기 전날'…김용 코너에 몬 남욱 기억력
“돈을 갖고 나가는 그 장면을 본게 제가 경선자금 드리는데 상당히 큰 계기가 됐거든요, 전달하면 당연히 김용 의원에게 가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 증인석에 앉은 남욱(50) 씨의 진술이다. “김용이 20억원을 요구했고, 총 8억4700만원을 남욱을 통해 모아 그중 6억원을 (김용에게) 전달했다”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진술로 드러난 이 사건의 주역 중 하나다.
그는 이날 재판에서 1억·5억·1억·1억 4700만원, 도합 8억 4700만원을 모은 과정과 그 돈이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된 날짜는 물론 ‘김 전 부원장이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쇼핑백을 가져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앞서 유 전 본부장, 정민용씨 등의 진술로 개요가 짜여진 현금 전달 흐름과 그 현장은 남씨의 진술로 구체성을 더했다.
이 사건이 진행되던 2021년 미국과 한국을 오갔던 남씨는 ‘입·출국 날짜’를 기준으로 사실관계의 선후를 또렷이 기억해냈다.
유동규·남욱·정민용이 처음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만난 2021년 2월 4일은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기간이 있던 시기였다. 남씨는 “2월 4일 정오(낮 12시)에 자가격리가 끝났고, 머리를 다듬으러 갔다가 오후 4시가 넘어서 유원홀딩스에 갔다”며 하루 일기를 쓰듯 그 날의 동선을 복기했다. 앞선 증인신문에서 2월의 만남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 만남을 4월 즈음으로 복기한 바 정민용씨의 기억을 바로잡은 것이다. 남 씨는 이 부분을 짚는 재판부의 확인 질문에도 “(3인이 유원홀딩스에 모인 건)2월 4일 한 차례 방문한 게 맞고, 이후로 서너차례 더 있는 게 맞다”고 재차 답했다.
정민용 씨가 ‘2021년 6월 초’라고 진술했던 5억원 전달 날짜도 ‘6월 6일’로 특정했다. 유 전 본부장이 5월 초 ‘최소 5억원’을 요청했고, 5월 30일 일요일, 유 전 본부장이 불러서 유원홀딩스 사무실에 갔다고 했다. 고문실에서 김용 전 부원장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광주에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고, ‘급하단다, 빨리 해달라’는 유 전 본부장의 재촉에 결국 억지로 6월 6일 돈을 빌려서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하고 7일 출국했다. 이 때 ‘이몽주’ 이름으로 5억원을 빌린 6월 6일자 차용증도 증거로 제시됐다. 남씨는 “그날 칼국수를 먹었고 유 전 본부장이 사줬다, 일반 통화는 아니고 카카오톡도 아니었다”며 세부사항들까지 기억해냈다.
남씨는 여러 차례 “정민용이 증언한 것처럼” 등의 표현을 쓰며 앞선 정 씨의 증인신문 내용을 보강하기도 했고, 같은 장면과 상황에 대한 묘사도 정 씨보다 더 자세했다.
남씨는 2021년 2월 4일의 첫 3인방 만남 당시에 대해서도 “오후 늦게 흡연실로 쓰이는 회의실, 서쪽과 남쪽 모두가 통유리여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더웠던 기억이 있다”“김용 의원이 들어갈 때 빈손, 나갈땐 쇼핑백 위를 잡고 나갔던 기억이 난다, 제가 있던 위치에서 보였으니 왼손일 것” “현대백화점 쇼핑백이었다, 저희 집앞에 백화점이 있어서 안다” 등 구체적 진술을 쏟아냈다.
남씨는 정씨가 ‘경선자금 얘기 말고 다른 사업 얘기도 했다’고만 진술한 부분에 대해서도 “김만배랑 화해하고 잘 지내보라는 식으로 유동규가 말했다”“당시 유원홀딩스가 캄보디아에서 개발사업을 하고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복기했다.
이몽주 이름으로 1억원, 5억원을 빌린 차용증을 두고는 “거래 당사자는 따로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에게 빌려준 걸로 알고 있었다”는 등, 김만배와 직접 접촉하던 시행업자 남욱은 ‘전달자’ 정민용·유동규 보다 직접증거 및 돈에 얽힌 배경을 자세히 진술했다.
김용 전 부원장이 “왜 처음에 진술하지 않았던 정치자금 사건을 나중에 갑자기 꺼냈냐”며 신빙성을 공격하자 남씨는 “처음부터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했습니다. 어느 기록엔가 있을 겁니다”라며 “자꾸들 물어보시는데.. 저 그렇게 의리없지 않습니다. 증거를 가지고 검찰이 물어보니까 그제야 대답한거고 정치자금법도 유 전 본부장이 말한 뒤에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용 전 부원장에게 전달할 경선자금을 부탁한 유 전 본부장이 ‘(이재명 후보가)대통령이 되면 인허가가 어려운 부동산 신탁회사 설립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말한 데 대해서도 “뭘 대가로 돈을 마련해주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내심 ‘도와주면 좋겠다’ 기대한 건 맞다. 충분히 도와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남욱→정민용→유동규→김용’으로 이어진 이 사건에서 최종 전달자인 유동규 전 본부장이 자세한 증거를 남겨두지 않은 탓에 퍼즐은 지난 증인신문을 통해 맞춰져 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 전 부원장이 코너에 몰리는 양상이다. 오는 30일에는 남 씨와 함께 일한 이몽주씨, 다음달 6일에는 유 전 본부장의 동거녀 박모씨가 증인석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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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