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퇴진' 열어둔 이재명, 2016년 '문재인-김종인' 모델 따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일각에서 제기된 ‘질서 있는 퇴진론’에 호응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 20대 총선 3개월여 전인 2016년 1월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당권을 넘긴 '문재인-김종인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 친이재명계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거론된 질서 있는 퇴진론은 문-김 모델을 염두에 두고 나온 해법이라고 한다. 당시 문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도왔던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전격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김한길 의원 등의 탈당 러시로 당 내부가 극도로 어수선하던 때였다. 문 대표는 얼마 뒤 지도부 총사퇴를 통해 대표직을 내려놓고 김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도 맡기면서도 공천권을 비롯한 전권을 넘겼다. 이후 김 비대위원장은 대대적 인적 쇄신에 나서며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김종인표 중도 확장을 내세운 것이 승리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 위원장을 직접 영입해 백의종군하는 모양새를 만든 문 대표가 등 떠밀려 나가는 모습을 피하면서 핵심 지지층 이탈을 막았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총선 승리로 확실한 대권 교두보까지 얻었다.
대선 패배 후 야당 대표를 맡았고 대권 재도전을 위한 총선 승리가 절실한 것은 당시 문 대표와 현재 이 대표의 공통점이다. 한 친명계 중진 의원은 최근 본보 통화에서 "이 대표의 목표가 대통령이라면 가야 할 길은 뚜렷하다. 2016년 문 대표가 갔던 길"이라며 "그러려면 이제 비명계도 이 대표가 선택을 할 수 있게 믿고 기다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표가 문-김 모델의 성공 공식을 따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겹겹이 쌓인 사법 리스크가 변수다. 이 대표는 17일에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출석하느라 오후에는 당대표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장동, 대북송금 연루 등 다른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고 구속영장도 재청구될 수 있다. 당이 총선 선대위 체제로 돌입하는 연말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총선이 1년 넘게 남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퇴진론이 불거진 것도 이 대표에게 불리하다. 이 대표가 연말쯤 퇴진할 것이라고 약속해도 비명계가 그 말을 100% 믿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대표가 당장 확답을 주기도 곤란하다. 당 관계자는 "중도 퇴진 가능성을 공식화하는 순간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 대표가 연말이 돼도 사퇴를 안 할 가능성 역시 남아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얼마 전 KBS라디오에서 "(2020년 당헌 개정으로) 당대표가 그만두더라도 최고위원 임기는 계속된다"며 지도부 총사퇴 가능성과 거리를 둔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대표가 연말쯤 사퇴해도 나머지 지도부 구성원들이 버티면 2016년과 같은 비대위 체제 전환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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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