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검찰 출석, 이례적 ‘황제 출두’…“전직 대통령들도 이러지 않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대면 조사를 받은 가운데, 잇달아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과의 협의 없이 출석 일시를 마음대로 정하고 1시간 지각 출석을 하는가 하면, 검찰 질문에는 33쪽짜리 서면 진술서로 갈음하겠다며 사실상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가 일반적인 피의자라면 이러한 태도가 구속영장 발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검찰에서는 “그동안 이런 분은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전직 대통령들조차도 검찰로부터 통보 받은 일시에 출석해 성실하게 조사 받았다. 이들은 검찰에 출석하면서도 국민들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만 짧게 남기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대국민 성명을 통해 검찰과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이 대표와는 대조된다.
◇ 출석·조사 태도 비협조적…구속영장 청구 간접 사유 돼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 개발 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기 위해 2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이날 조사가 성사되기까지 이 대표 측은 출석 횟수와 시간을 놓고 검찰과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당초 27일과 30일 두 차례 출석할 것을 통보했으나, 이 대표 측에서는 수사팀과의 협의 및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출석 날짜를 정했다. 검찰은 정 그렇다면 28일 오전 9시 30분에 출석하라고 요구했으나, 이 대표는 이마저 응하지 않았다.
2021년부터 시행 중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검사는 피의자에게 출석 요구를 할 때 조사 일시·장소에 대해 협의한다. 피의자가 출석 일시의 연기를 요청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조정해준다. 이처럼 사전에 충분한 협의와 조정을 거쳐 일시를 확정 짓는 게 일반적인데, 이 대표는 조율 없이 일시를 정해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
결국 이 대표가 1시간을 ‘지각 출석’하는 바람에 검찰은 차장검사와의 티타임도 제안하지 못했다. 수사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사 시간이 충분했다면 고형곤 중앙지검 4차장이 티타임을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조사실 안에서도 내내 비협조적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현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대국민 입장 발표’를 마치고 청사에 입장한 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33쪽짜리 진술서로 갈음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서면 진술서를 스스로 공개한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가 그렇게 결백하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변소했어야 하는데, ‘진술서 하나로 갈음하자’는 식이라면 조사에 나올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반적인 피의자라면 그런 식의 답변 태도는 구속영장 발부에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는 등 신병 처리를 할 때 일반적인 구속 사유(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에 ‘비협조적 태도’를 더해 주장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 측에서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해 중앙지검의 2차 출석 요구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본다. 검찰 관계자는 “1시간 지각 출석을 하고 비협조적 태도를 보인 것이 전부 기록돼있는 상황에, 추가 출석을 거부한다면 구속영장 청구 사유가 늘어날 수 있다는 걸 이 대표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지검은 28일 조사 종료 후 이 대표 측에 31일과 다음달 1일 중 하루를 택일하라며 2차 출석을 요청했는데, 이 대표는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욕적이고 부당하지만, 대선 패자로서 오라고 하니 또 가겠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검찰 출석 불응은 구속영장 청구의 ‘직접적인’ 사유가 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검사는 관할 지방법원 판사에게 청구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실제로 발부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다음달 2일부터 2월 임시국회가 소집되기 때문이다. 현역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이 있어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관할 법원이 정부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제출한다. 대검찰청과 법무부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면 법무부가 체포동의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민주당 의원 수가 현 국회의 절반을 훌쩍 넘는 169명에 달하는 만큼,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의안은 과반 출석에 과반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가 지금껏 취해온 태도는 일반적인 피의자라면 꿈도 못 꿀 일”이라며 “자신을 지켜줄 ‘방탄국회’가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 ‘권력 정점’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없던 모습…檢 “이런 분 처음 봐”
검찰 출석 및 대면 조사 과정에서 이 대표 같은 태도는 결코 흔치 않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직 대통령들조차도 협조적인 태도로 조사에 응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2017년 3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로부터 엿새 뒤인 21일 9시 30분에 출석해 조사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 같은 날 이에 응했다. 포토라인 앞에 서서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두 마디를 남기고 1차장과 티타임한 뒤 진술 거부 없이 충실히 답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야 조사를 거부한 이 대표와 달리 다음날 오전 6시 55분까지 신문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한 후 귀가했다. 이듬해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검찰이 통보한 3월 14일 오전 9시 30분에 출석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이 2009년 4월 30일 오전 10시에 출석할 것을 요청하자, 협의 끝에 출석 시간을 오후 1시 30분으로 조정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나와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대검찰청에 출석, 밤샘 조사를 받았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2차례 출석 통보에 모두 응했으며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조사실에 들어갔다. 이들과 달리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검찰의 출석 통보를 거부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는데, 검찰은 당일 밤 늦게 구속영장을 발부 받아 다음날 바로 전 전 대통령을 교도소로 압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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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