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판 바꾸면서 꼬였다…文정부 연금개혁 실패한 이유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 초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협상의 판을 크게 흔든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실제 연금개혁을 주도해야할 정치인과 정부의 영향을 대폭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해관계자의 주장이 엇갈리고,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연금개혁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는 지적이다.
연금개혁 논의 초기부터 개입한 양대노총
30일 입법조사처의 학술지 '입법과정책'에 실린 '다중흐름모형을 활용한 국민연금제도의 정책 과정 분석: 문재인 정부 시기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송해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송 위원은 미국의 정책학자인 존 킹던이 제시한 다중흐름모형을 통해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 과정을 살펴봤다. 이 이론은 정치흐름과 정책문제흐름, 정책대안흐름이 정책혁신가의 개입을 통해 결합하고, 이후 정책 변동과정을 거쳐 정책이 산출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송 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 과정이 변동하는 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영향을 줬다고 봤다. 기존의 정치, 정책 등의 흐름을 통해 연금 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이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노총은 2018년 9월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연금개혁위원회' 설치를 제안하면서 '가입자 중심의 사회적논의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연금 개혁 6대 요구'를 발표하며 "광범위한 국민의견 수렴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요구가 거세게 제기되면서 정책 흐름이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는 것이 송 위원의 분석이다. 실제, 경사노위에 연금개혁특위가 발족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국민연금개혁안 초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 개혁안을 만들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후 구성된 연금개혁특위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들이 모두 투입됐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은 모아지지 못하고 정부의 종합운영계획안을 통해 4가지 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한국노총 등이 제시한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5%로 함께 인상' 방안과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제안한 '현행 유지' 방안 등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국회로 넘어갔고,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모두 폐기됐다.
송 위원은 "과거 정부와 비교해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정책 추진의 가장 큰 차별성은 다중 흐름모형에서 정책변동의 창이 사회적 대화라는 논의틀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각 계층의 입장을 확인하고 방안을 모색해가는 데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가 강조되면서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과 행정가의 역할이 대폭 축소된 것은 문제로 봤다. 실제 정책을 만들고 결정해야할 이들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송 위원은 "사회적 대화가 모든 정책 과제를 풀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지만, 어떻게 사회적 관심과 갈등을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연구 결과가 국민연금정책 추진 과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영국은 4년간 개혁…시간 충분히 줘야
국민연금 개혁을 주도하는 개혁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연구는 이외에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문현경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효과적인 연금개혁을 위한 개혁위원회의 중요성' 보고서를 통해 영국과 독일의 개혁 성공 이유를 한국의 실패 사례와 비교해 제시했다. 이 분석에서 사용한 것은 패트릭 마리어 캐나다 콘코디아대 정치학과 교수의 분석 틀이다.
우선은 위원장의 신분 차이다. 영국은 총리가 추천한 아데어 터너 메릴린치 부회장, 재무부 장관이 추천한 지니 드레이크 노동조합총협의회 의장, 노동연금부가 추천한 존 힐스 런던 정경대 교수 등 3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소수의 인원이 각 분야를 대표했고,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탈정치적으로 활동하며 높은 응집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뤼룹위원회는 연금보험 분과에 8인의 위원이 활동했는데 대부분을 개혁 지향적 인물로 구성해 추진력이 높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문 정부에서 구성한 경사노위 연금특위에는 노동계, 경영계, 청년, 비사업장가입자, 정부 등을 각각 대표하는 15인의 위원이 위촉돼 활동했다. 국민연금행복위원회는 13명이 연금개혁을 논의했다. 위원장은 두 차례 모두 교수나 연구원 등 학자였다.
두번째 중요한 요소는 독립성이다. 영국은 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은 물론, 정부 부처나 시민사회의 지지 수준도 높았다. 영국은 재무부가 한때 논의의 범위가 너무 넓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갈등 조정을 통해 해결했고, 노조와 경영계 모두 위원회의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독일은 형식적으로는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 부처(노동사회부) 산하에 위원회를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사회부가 위원회의 실질적인 독립을 보장했고, 대표성이 높은 노사 위원이 참여하면서 지지 수준도 높았다.
논의의 기간도 중요했다. 영국은 위원회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햇수로 4년동안이나 활동했다. 연금 개혁이라는 과제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해결책을 도출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노동연금부도 행정과 정책 지원을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이들의 논의를 뒷받침했다. 독일 뤼룹위원회는 10개월간 운영됐다. 하지만 위원회 설치 1년 전 리스터 연금개혁이 있었던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이들은 실제로 1개월만에 합의된 개혁원칙을 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6개월 간 운영되고 활동이 종료됐다.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았다.
이같은 점을 국회에 설치된 연금특위의 구성과 운영 과정에 참고해야 실질적인 연금개혁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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