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정치적 후폭풍 불가피
168명 찬성, 국힘·정의당 표결 불참... 87년 체제 이후 네번째... 윤 대통령, 거부권 시사
국회가 29일 오후 박진 외교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처리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43일 만이다. 법적구속력이 없는 만큼 해임 여부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 다만, 1987년 이후 국회의 장관 해임건의안이 단 세 차례만 가결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용 여부와 무관하게 적잖은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들만 참여한 단독 처리였다. 그러나 '국회 재적의원 과반(150석) 이상'란 의결정족수는 훌쩍 넘었다. 무기명 투표 결과, 재석 170인 중 찬성 168인, 반대 1인, 기권 1인이었다.
해임건의안은 당초 이날 오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직후 처리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오후 6시 속개된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박진 장관이 현재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방한 일정을 수행 중인 상황에서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등에다 칼을 꽂는 행위'라는 국민의힘의 항의를 수용한 결과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채 퇴장했다. "박진 장관에게 해임건의안을 제기할 요건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비속어 논란)는 MBC 자막조작 편집 왜곡, 편파방송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란 취지였다.
정의당은 다른 이유로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외교참사의 책임은 명백히 윤 대통령에게 있는데 박진 장관에게 대신 물을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본회의 전 브리핑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낭패, 한일 '약식회담', 한미 '48초 환담' 등 외교 참사의 직접 책임은 대통령실에 있다.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1차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불참 사유를 밝혔다.
그는 특히 "이번 순방 외교가 참사로 귀결된 본질적 이유는 '비속어 파문'이다. 이는 대통령 본인의 잘못이고 대통령이 국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사과해야 할 일"이라면서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장 부대표는 "해임건의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표결은 국회뿐만 아니라 정치 그 자체를 '올스톱'시키는 나쁜 촌극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휘핑보이(Whipping boy : 왕자 대신 매맞는 소년, 여기선 박진 장관을 의미)' 뒤에 숨지 말고 국민과 국회에 사과하시라"고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해임건의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윤 대통령은 이날(29일) 오전 출근길 문답 때 "박진 장관은 탁월한 능력 가진 분이고,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 위해서 전 세계로 동분서주 하는 분"이라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국민들이 자명하게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처리되더라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장관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제 거취는 임명권자 뜻에 따르도록 할 것"이라고 짧게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외교부는 이날 하루 뒤인 30일 이후의 장관 일정을 밝히면서 장관직 유지 가능성에 힘을 더 실었다.
국민의힘도 이날 본회의 산회 직후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사유는 그 어디에도 합당한 이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면서 해임건의안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욕설만 남은 외교참사를 막지 못한 것도, 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오도록 한 무능도 모두 박진 장관과 외교라인의 책임"이라며 "윤 대통령은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고 대통령실 외교라인 역시 즉각 쇄신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1987년 이후 역대 국회에서 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한 사례는 ▲2001년 임동원 통일부장관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 ▲2016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등 총 세 차례다. 이중 임동원 장관과 김두관 장관은 해임건의안 가결 후 자진사퇴를 택했다. 그러나 김재수 장관의 경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수용 불가 입장을 공개 천명하면서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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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