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백내장 실손 못타"..'절판마케팅' 안과 매일 100억씩 빼갔다
손해보험사 청구금 문건 입수
실손보험 적자 주범 꼽히며
심사 까다로워진 백내장 판정
내달 지급 기준강화 앞두고
보험금 빼먹으려는 일부 안과
가입자에 '과잉 수술' 유혹
하루 청구금액 연초대비 3배
시술이라며 수술 권하거나
멀쩡한 눈 손대는 '생내장'도
"4월부터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상을 안 해줍니다. 3월에 서둘러 백내장 수술을 받으세요."
얼마 전 동네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70대 박 모씨는 수술비 등 총 진료비로 48만원을 냈다. 반면 서울 강남 A안과에서 같은 수술을 받은 70대 오 모씨는 수술비로 1600만원을 지불했다. 백내장 수술은 혼탁해진 눈의 수정체를 제거한 후 인공수정체로 교체하는 수술이다. 어떤 렌즈로 교체하느냐에 따라 진료비 차이가 크긴 하지만, 일부 안과들이 양쪽 눈 수술에 1600만원까지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실손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씨도 실손보험 가입자여서 수술비 1600만원을 모두 보험사가 부담했다.
30일 B보험사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 같은 일부 안과의 허위·과잉 진료가 기승을 부리면서 매일 100억원(주요 손해보험사 합산)의 실손보험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내장 수술로 청구된 보험금은 작년에만 해도 하루 평균 30억원대였는데, 올해 초 50억원을 넘어서더니 3월에는 100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백내장 수술 보험금 청구 상위 15개 병원에서는 1월 대비 2월 청구금액이 많게는 1.7배나 늘었다. 보험사들은 3월에는 더 급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B보험사의 백내장 보험금 청구는 지난 1월 평균 10억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보험금 지급 기준이 강화된다는 2월 초 언론 보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억원에 육박했고, 3월 들어서는 매일 2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6일 하루에만 27억2000만원의 보험금이 청구된 것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백내장 수술이 폭증한 것은 일부 안과에서 환자들에게 1~3월 안에 수술할 것을 적극 권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의료계에 때아닌 '절판 마케팅'까지 동원된 것은 4월부터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 기준이 강화돼서다.
백내장 수술은 한 해 3조원에 육박하는 실손보험 적자의 주범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작년 백내장 수술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이 1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이 같은 적자를 줄일 대책으로 백내장 수술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보험금 청구 때 '세극등현미경검사 결과'를 제출하도록 심사 기준을 보완한 것이다.
백내장 수술은 수술 시간이 짧고 입원도 필요 없어 '간단한 시술'이라며 병원에서 권하는 경우가 많다. 백내장은 국내 주요 수술 33개 중 1위이고, 작년 백내장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만 140만명에 달한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과잉 수술이 의심되는 안과 상위 40곳은 의사 1인당 하루 평균 9~10건씩 백내장 수술을 하고 있었다.
B보험사 관계자는 "'노안 시력을 교정해준다'며 멀쩡한 수정체를 잘라내고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생내장' 수술도 만연한 상황"이라며 "지급 기준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장치일 뿐, 전문 브로커까지 동원된 백내장 보험사기를 막기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70대 이상이 주로 받던 백내장 수술을 40대와 50대가 많이 받고 있다는 점도 실손보험금을 노린 과잉 진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B보험사에 따르면 청구금액 상위 15개 안과의 경우, 수술 환자 2명 중 1명이 59세 이하였다. 작년 53%였던 59세 이하 백내장 수술 환자는 올 1월 57.2%로 늘었고, 2월(55.5%)과 3월(57.5%)에도 절반을 훌쩍 넘었다. 백내장은 꼭 필요한 사람만 해야 하지만, 렌즈 삽입술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수술받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안과가 빼먹은 보험금을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원장은 "보험사기는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 공공의 이익을 좀먹고, 전체 구성원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조용한 재난'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일부 도덕적 해이 집단만 배불리고 정작 필요한 사람은 혜택받지 못하는 사회악이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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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