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단과 설렁탕의 기원


동대문구 제기동에는 (전)서울대학 사범대 뒤뜰이기도 했던 곳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5호인 선농단이 있는데 사방 4×4m의 석축으로 들러싸인 제단이 있다.
선농단은 조선시대 역대 국왕이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농업신인 신농씨, 후직씨를 주신으로 모셔놓고 제사 지내던 곳이다.
선농의 기원은 멀리 신라에까지 이어진다
박혁거세는 완비를 대동하고 육부를 순회하면서 농사와 누에로 실을 잣는 잠사를 권장하고 감독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그 시초로 보는 것이다.
입춘이 지난 해일에는 중농제를 지내며 입추가 지난 해일에는 후농제를 지냈다고 한다.

농업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 지냄은 고려 성종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왕이 선농단에 나아가 제를 지냄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진다.
농업을 주업으로 한 농경 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는 그 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제례를 올린 왕은 제단 근처의 적전(왕이 직접 농사짓던 논밭)에 나아가 친히 땅을 가는 시범을 보였는데 이는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는 소를 잡아 조정 중신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국밥을 말아 술과 함께 내렸다.
이 국밥은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탕 이라 했다가 설렁탕이 되었다.

제기동의 선농단에 관경대가 쌓인 것은 성종 7년인 1476년의 일이다
왕이 적전(왕이 직접 농사짓던 논밭) 나아가 친경을 할 때에는 백성들 중 나이가 많고 복 있는 자를 골라 동참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친경(왕이 농사 장려에 솔선 수범)은 조선이 일본에 강제 합방되기 전해인 1909년까지 이어졌으나 합방 후 없어졌다.
왕이 친히 밭을 갈던 적전(왕이 직접 농사짓던 논밭) 두 군데인데 동적전은 근처의 전농동에 있었고 서적전은 개성 동쪽에 같은 이름인 전농동에 있었다.

한편 선농단 옆에는 높이가 10m에 이르고 둘레가 2m나 되는 향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이 향나무는 현재 국내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중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
그 수령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초 선농단을 축조할 때 심은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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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최상범교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