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정보원은 개인의 사유기관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국정원이 정치개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이유는 99% 원장의 잘못된 조직 지휘와 발언 때문이다. 원세훈 원장 시절의 댓글 사건이 그렇고 지금 박지원 전 원장의 잘못된 정치적 발언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국정원 조직이 숙명처럼 안고 살아온 ‘원장 리스크’가 또 도지고 있다.

전 국가정보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박지원 전 원장은 유투버나 시사평론가처럼 언론매체 가리지 않고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 윤석열 정부에 대해 훈수를 넘어 도 넘는 발언을 일삼고 있는 박씨의 등장으로 김씨의 언행은 별거 아닌 게 됐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에서는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 행동 지침이라고 하는데, 박씨는 자청해 ‘국정원 X파일’ 운운하는 등 거의 매일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전직 국정원장의 가벼운 입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 안위를 위한 국정원 본연의 업무는 거의 무력화된 상황이다. 문 정권 초기 적폐청산한다며 국정원의 메인 서버를 친북 성향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 공개하던 날 전현직 정보요원들은 경악했다. 어느나라 정보기관이 일부도 아니고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메인 서버를 자진해서 공개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 국정원 1급 간부 27명을 대기 발령 냈다고 야당인 민주당에서 안보 공백이라며 연일 여당과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4명과 간부 40여명이 구속됐다가 풀려났거나 아직 수감 중이다. 그 과정에서 적폐 인사로 몰려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은 국정원 직원들이 수백여 명에 이른다. 이건 안보 공백이 아니라 안보마비였다. 언제가지 야당은 내로남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공격할 것인가.

여기에 국정원을 망가뜨린 또 다른 주범으로 서훈 전 원장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훈 전 원장도 국내 정보 활동 금지,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등으로 국정원을 해체에 가까울 정도로 마비시킨 장본인이다. 북한·해외 정보활동에 전념하겠다 했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활동이 제대로 될리 없었으며 또 정작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날 것임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해외 정보활동에 전념하지도 않았다. 정보기관의 손발을 다 묶고 눈까지 가려놓고 정보수집과 첩보활동을 하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박지원, 서훈 전 원장들이 벌인 어처구니 없는 일 중 하나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다. 멀쩡히 공무원 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잘 살고 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자진 월북자로 만들고 국민이 불에 타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에 아무런 항의도 없이 이 중대한 사건을 덮어버렸다. 또 귀순의사를 분명히 밝힌 북한 귀순 주민을 북한에 자진해서 돌려보냈다.

국가정보원은 대검에 제출한 고발장에서 박지원 전 원장에 대해선 서해 공무원 피살 당시 ‘첩보 보고서 삭제’ 혐의를, 서훈 전 원장에 대해선 귀순 어민 강제 북송 당시 ‘합동 조사 강제 조기 종료’ 혐의를 적시했다. 국정원은 최근 고강도 내부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혐의들을 포착하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내부 직원들의 증언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정보원은 박지원·서훈 전 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해 이 같은 일탈 행위들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이 밝힌 박 전 원장 혐의는 첩보 관련 보고서의 무단 삭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20년 9월 정보 당국은 해수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 달라’는 취지로 북한군에 구조 요청했다는 감청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계획된 월북’보다 ‘표류’ 쪽에 힘을 실어주는 첩보 내용이다. 당시 국정원이 이 같이 이씨 월북 가능성과 배치되는 대목들을 보고서에서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원장은 공용 전자 기록을 손상한 혐의도 받는다. 해수부 공무원과 관련한 전자 기록에도 손을 댔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선 “이씨를 월북자로 몰아가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가 조직적으로 첩보를 ‘취사선택’했는지 여부가 혐의 입증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공무원이 피살되던 날 문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종전 선언’을 강조하는 녹화 연설을 했었다.

서훈 전 원장은 2019년 11월 2일 나포한 귀순 어민에 대한 합동 조사를 강제로 서둘러 종료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합동 신문이 사흘 만에 종료된 배경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는 취지의 서 전 원장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 탈북자 합동 신문에 수주~수개월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 사건은 숱한 의혹을 남겼다. 합동 조사 과정에서 북한 어민들이 수차례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정부가 “귀순 진정성이 없다”며 북송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살해 현장인 소형 어선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북측에 넘겨졌다. 당시 국정원은 ‘증거인멸’ 우려에도 귀순 어민이 타고 온 오징어잡이 어선의 소독을 의뢰했다.

귀순 어민 2명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11월 5일 문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게 부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다. 그러면서 같은 날 “귀순 어민·선박을 북측에 인계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셈이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코드에 맞춰서 ‘신속한 조사’를 재촉했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무리하게 강제 북송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두 사건은 모두 ‘하노이 노딜’(2019년 2월) 이후 경색된 남북 대화 재가동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하자만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대한민국 국민이 살해당해도 침묵을 지키고 자유를 찾아 내려온 귀순자들도 의사에 상관없이 무조건 북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안좋은 말이 나와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요소들은 무조건 숨기고 본 것이며 이 과정에서 당시 국정원이 무리수를 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봐도 내 눈앞만 안보일 뿐이지 그 손바닥 가린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국정원이 진실규명에 나선 것을 정말 다행이여 공정한 기준으로 사건을 면밀히 재조사 해주길 바란다. 국정원의 조사 결과가 나온 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보주권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 이우성 뉴스젠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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