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규명에 민주당은 무엇이 두려워 자료 공개 못 하나

                               
2020년 9월 북한군에 피격당해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문재인 정부 당시 월북으로 판단했던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며칠 전 "월북 증거가 없다"고 입장을 바꾸면서다. 유가족 측은 22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간 진실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건 이 사건을 둘러싼 실체적 진실 규명이다. 그러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요한 민생 현안이 아니다”라며 이를 외면할 태세다.

진상 규명을 위해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생이 굉장히 심각한데 지금 그런 걸 할 때냐. 이게 왜 현안이냐”고도 했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사살돼 불태워지고 억울하게 월북자로까지 몰린 중대 사건인데 민생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며 진상 규명을 거부한 것이다.

심지어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힌 유가족들의 억울한 심사를 달래주긴커녕 "월북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특히 야당 측은 여당의 정보공개 요구에도 "신(新)색깔론"이라고 맞서면서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된 이 사건 자료는 국회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는 한 공개가 어렵다.

2020년 9월 22일 오후, 서해에서 표류 중이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상황 보고를 처음 청와대가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그는 북한군의 총격을 받았고 기름 부은 불길에 휩싸여 한줌의 재도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공무원이자 두 아이의 가장이며 딸바보였던 40대 국민은 월북자로 낙인 찍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국민의 생명을 수호할 헌법적 책무가 있는 그 누구도 그를 살리지 못했다. 군이 북측의 표류 공무원 접촉을 인지한 후 만행까지 약 6시간, 사실을 군에서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통령 첫 서면보고 뒤로도 3시간가량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3시간 후 이씨는 사살됐고 시신마저 소각돼버렸다. 그 누구의 ‘국민 살리기’도 없었다.

사건 당시 군은 “북이 이씨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지만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지침을 받은 뒤 “시신 소각 추정”으로 입장을 바꿨다. 민정수석실은 해경에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고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의 만행에 눈 감고 이씨를 월북자로 몰아간 것 아닌가. 이게 사실이라면 국가의 폭력이자 심각한 인권 침해다. 이걸 규명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은 민생 현안보다 더 중요하다. 국민의 인권을 짓밟고 하루 아침에 월북자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민생운운하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 아닌가.

문 정권 인사들은 국민의 억울한 죽음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북의 야만적 살인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덮어야 할 이슈였고, 국민의 억울한 죽음은 치밀하게 월북을 준비했던 범죄자의 최후로 포장됐다. 김정은의 진심없는 ‘유감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북한 통일전선부 통지문이 공개되자 유시민은 “김정은=계몽군주”라고 김정은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불러댔고 김어준은 북의 만행을 “일종의 (코로나) 방역”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으며, 집권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규탄 결의문’ 대신 ‘종전선언·관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문 정권의 ‘북한 퍼스트’ 정책이 낳은 참사다. 사건 발생 2주 전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친서를 보냈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직후엔 한반도 종전선언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있었다. 그는 국민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지 4시간 만에 “남과 북은 생명공동체”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사건 발생 이틀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개최됐지만 ‘사람이 먼저’ 구호를 부르짖던 그는 참석하지 않았고, 아카펠라 공연장을 찾았다.

북한 눈치 보기와 대북 저자세로 일관했던 문 정권이 김정은과 남북관계를 의식해 국민 생명까지 나 몰라라 하며 국민 희생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직무유기를 저지른 것이며 이것은 사실상 북에 대한 인신 공양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진상 규명을 공개 언급한 것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였다. 대선 후보 시절 그는 수차례에 걸쳐 “사건의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북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고인의 명예를 되찾아 드리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시절인 지난 5월 2일 피살 공무원 유가족과 만나 “정권이 바뀌면 다른 건 몰라도 사건 당시 보고 기록부터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 국방위 비공개 회의록 열람에는 협조하겠지만 '대통령 기록물' 공개에 대해선 꺼리고 있다. 대통령 기록물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사결과 번복으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고 정치권은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쟁보다 진실 규명이 먼저다. 민주당은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하지 말고 전향적으로 먼저 나서서 의혹을 떨쳐내야 한다. 그래야 ‘뭔가 꺼림직한 내용이 있어 숨기려 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정보공개에 당연히 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을 거론하며 “긴박한 사고의 순간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검경·특검·감사원·국정조사·특조위·사참위까지 수백억 원을 들여 수사·조사를 벌였다. 이것은 사실상 정치적 목적의 조사였다. 그러고도 “유족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진상 규명이 안 돼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과 관련된 일에는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공개를 막은 채 함구하고 있다. 세월호와 이씨 유족의 눈물은 뭐가 다른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동안 신경도 안쓰던 민생 운운하며 진실을 숨기려는 것인가.

민주당은 “월북 근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근거를 공개하면 된다. “첩보 시스템이 노출돼서 안된다”는 변명도 한다. 그렇다면 검경이나 감사원이 기록을 열람토록 해 결론을 내리면 된다. 민생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이대준씨 사건 조사가 민생에 얼마나 어떻게 방해가 된다는 것인가. 오히려 지난 5년간 잘못된 정책과 집권 다수당을 내세운 입법 폭주로 민생을 어려움에 빠트린 건 다름 아닌 민주당 정권이다. 대선과 지선에서 패배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인가. ‘신색깔론’을 내세운 억지 주장과 어깃장은 이제 그만하고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게 정말 국민의 ‘민생’을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보공개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 이우성 뉴스젠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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