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명분 없는 민주당의 법사위원장직 이양 합의 파기

5년만에 정권 뺏기고도 반성 없이 저 혼자 당당
‘독불장군’,‘입법 독주’ 이미지만 만들뿐 민심회복에는 전혀 도움안돼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거의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전혀 선거에 패한 정당 같지 않다. 과거에는 보수건 진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선거에 지고 나면 뭐가 잘못되어 패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당내에서 일어나곤 했다. 집권당이라면 정책 노선이나 추진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오만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야당이라면 왜 또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는지 부족한 점을 살펴보곤 했다. 민주화 이후 권력 교체가 10년마다 이뤄져 온 전례와 달리 이번에는 5년 만에 전격적으로 권력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선거에서 진 정당이 아니다. 당선자와 패배자의 득표율 차가 겨우 0.7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패배한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조금 나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경험이 아예 없고 정계 입문한 지도 겨우 9개월 된 야당 후보에게 더 많은 국민이 지지를 보냈고 그 결과 정권이 교체됐다. 여기에 180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지지를 몰아준 국민이 불과 2년 만에 민주당에 철저하게 등을 돌렸다. 생각이 제대로 박힌 정당이라면 무엇이 잘못되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냉철하게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상황이다.

보수와 진보가 10년마다 돌아가면서 집권하는 것을 넘어 이제 5년 만에 정권이 바뀐 시대가 됐다. 그야말로 권불십년이 아니라 권불오년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검수완박 강행처리에 이어 올 6월부터 시작되는 21대 국회 후반기 때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한 합의안을 뒤집고 법사위원장직을 계속 자신들이 맡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이 기존 법률체계와 충돌하는 점이 없는지 최종 심사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기능 때문에 역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국회의장직을 보유하면 소수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 상호 견제하도록 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관례마저 깨고 다수의석으로 국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심산이다.

21대 국회가 출범할 때 국민의힘은 야당에 할당된 7개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포기하면서 민주당 독식 국회를 방치했다.
이후, 임대차 3법 등 각종 법안 처리 과정에서 득보다 실을 절감하고 지난해 7월 원 구성 협상 재개를 민주당에 요청했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직을 요구했지만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완강히 거부했다.
진통 끝에 여야는 후반기 국회 법사위원장을 국민의 힘이 맡는 것으로 합의하고 원 구성 협상을 마쳤다. 그런데, 대선에서 패하고 야당이 된 민주당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계속 맡겠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을 입법부가 견제해야 한다는 이유다.

작년 7월 합의의 당사자인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에 힘에 주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고 그 이유로 “검찰 쿠데타가 완성돼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견제할만한 사람은 국회 내에 법사위원장밖에 없다”고 했는데 거듭 읽어봐도 논리적 합리성이 빈약하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후반기 원 구성 문제는)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향후 2년 원 구성에 대한 협상주체는 현재의 원내대표"라고 밝혔다.

이것은 사실상 대놓고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정치는 여야 간의 신뢰가 기본이다.

지금 민주당은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민주당에 진정 필요한 것은 국민에게 진정한 변화와 혁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수의 힘으로 뭔가를 자꾸만 밀어붙이려는 행태는 ‘입법 독주’ 이미지만 높이는 역효과만 초래하기가 십상인 상황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이상민 의원의 “법사위원장은 원칙대로 해야 한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각각 다른 당이 나눠서 몫을 맡고 있고, 거기에 비춰 일반론을 따라서 하면 될 것”이라는 반론도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

지난 21대 총선 대승 이후 민주당에 생긴 ‘힘의 논리’ 의존 관성이 문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옳다. 민심을 바탕으로 당론을 이끌어가면서 입법과정에 무리가 없도록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발휘하는 게 핵심이다.

국민들은 민주당을 약자로만 보지 않는다. 야당이 됐다고 무작정 온정만 받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좀 더 대승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입법 독주’ 이미지만 높일 뿐, 민심 회복에 백해무익한 국회 법사위원장직 고수 같은 소탐대실의 무리수를 고집하는 것은 슬기로운 선택이 아니다. 대선 패배 이후 좀처럼 감동적인 모습을 일궈내지 못하는 민주당의 행태가 딱하다. 민주당의 현명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우성 뉴스젠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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