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 벗어던진 의사단체… 환자생명 볼모에 여론은 `싸늘`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본격적인 투쟁을 벼르고 있다. 당장 19일부터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진료공백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론은 의대 증원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의사단체가 명분 없고 무책임한 집단행동을 되풀이한다는 여론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집단행동을 강행할 경우 강대 강 대치로 인한 파장이 사회 전반을 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의사단체와의 대치에서 그치지 않고 의사단체와 대중과의 갈등으로 확산될 지도 주목된다.
의사단체들은 지난 15일 저녁 서울시의사회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개최한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레지던트 1년차 수료를 앞두고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는 한 참가자는 "의사가 환자를 두고 병원을 어떻게 떠나느냐 하시겠지만,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고, 당장 저를 지켜내는 것도 선량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말도 논란이 됐다. 그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적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8일 "정부가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동에 위헌적 프레임을 씌워 처벌하려 한다면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높은 발언 수위를 이어가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 직후 이런 내용을 담은 성명을 내고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은 의사들의 자율적인 행동을 억압하고 처벌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한국 의료를 쿠바식 사회주의 의료 시스템으로 만들고, 의사를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하는 정부의 행태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정부에 경고한다"며 "만약 정부가 대한민국 자유시민인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동을 처벌하려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의사들의 발언에 "이기적이다", "특권의식이다" 등 비판하는 댓글도 쏟아지고 있다. 수술을 코앞에 두고 연기 통보를 받은 환자들은 애타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환자와 환자 가족을 중심으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명분을 의문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 움직임을 비판하며 진료 중단을 막기 위해 국민 촛불행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18일 보건의료노조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의대 증원에 맞선 의사 집단 진료중단은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며 "국민들이 나서서 진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벌써부터 예약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입원 날짜가 미뤄지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며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응급실·수술실 등 필수업무는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는 19일 전공의 집단 사직과 진료 중단에 따른 환자 피해 사례와 의료 인력의 고충 사례를 전면 조사해 국민 앞에 공개하고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모든 국민들과 국민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편 '빅5'라고 불리는 서울 시내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기정 사실화하고 수술 일정을 조율하는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빅5 전공의들은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의사들은 정부의 무리한 의대 증원과 적대적인 여론 탓을 하며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여론은 의대 증원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 보건의료노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는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했다. 85.6%는 "의협이 진료거부 또는 집단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갤럽은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천2명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에 대한 생각을 물은 결과에서도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가 76%에 달해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16%)는 응답을 압도했다.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동맹휴업 결의도 잇따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50대 회사원 A씨는 "대학 정원을 늘리는 걸 의사들이 환자를 팽개쳐가면서 반대했다는 건 다른 나라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특히 대학생이 후배들의 정원 문제까지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보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의협은 이런 부정적인 여론의 상당수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의대 증원 반대 논리를 알리기 위해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에 대한 생각을 물은 결과에서도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가 76%에 달해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16%)는 응답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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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