手記로 돌아간 '세계 최고' 디지털 정부…명성에 '오점'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가 이틀째 이어지면서 그간 세계 무대에서 쌓아온 '디지털 정부'의 명성에도 오점이 남게 됐다.
한국의 디지털 정부, 전자정부 시스템은 유엔(UN)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은 2019년 OECD의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022년 UN 전자정부 평가에서는 종합 3위를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정부 구축과 운영 경험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정부는 '국민·기업·정부가 함께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비전으로 국민이 편안하고 기업이 혁신하는 과학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사이트 한 곳에서 모든 민원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하고, 국민이 친숙한 앱을 통해 생활 정보와 혜택을 얻는 모습은 정부가 그린 디지털 정부의 일상이다.
정부는 데이터 기반 행정과 법령에 근거한 공공데이터 개방을 확대해왔다. 디지털 정부 선도국으로서 정부·국제기구 간 다자협력을 통해 디지털 정부 경험과 노하우를 개도국 등 후발 주자에 전수해왔다.
제3세계 고위 공무원단이 매년 한국을 찾아 전자정부를 배우고, 관련 시설을 견학하는 일은 디지털 정부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국은 국제사회 디지털 정부 발전 방향 수립에도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디지털 네이션스(Digital Nations)' 등 디지털 정부 선도국 협의체를 통해 공동 연구, 국제회의 등에도 다양하게 참여해왔다.
이처럼 최고의 디지털 정부로서 한국이 쌓아온 역량과 성과는 숱하게 많다.
전자정부 업무를 주도해온 행정안전부 안에는 디지털정부실이 별도로 설치돼 있을 만큼 디지털 정부 업무는 중앙 정부안에서도 비중이 큰 편이다.
이번 행정서비스 장애로 한동안 전면 중단됐던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는 디지털 정부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본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이 찾기 전에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서 제공한다는 디지털 정부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전자 정부의 시작인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이 인증 장애로 '셧다운'되면서 동 주민센터 등 민원 현장은 증명서를 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국민 불편 현장이 됐다.
연간 1천200만명이 사용하는 '정부24'는 온라인 민원서비스의 포털사이트 기능을 해왔으나 행정전산망이 먹통이 되면서 마찬가지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행안부가 18일 임시 서비스를 재개한 '정부24'는 2017년 기존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민원24'와 '대한민국 정부포털', '알려드림e' 등 3개의 행정정보 사이트를 통합해 출범했다.
민원인이 동 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고도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 등 870건이 넘는 증명서를 앉은 자리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덕분에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즐겨 찾는 '국민앱'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행안부는 17일 온종일 행정전산망이 마비되자 확정일자 등과 같이 접수와 함께 즉시 처리를 해야 하는 업무는 민원실에서 먼저 수기(手記)로 접수를 한 뒤 날짜를 소급해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에 오래전 업무처리 방식인 수기가 다시 등장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디지털 정부가 외형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민원 행정이 구현되는 현장에서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행안부는 전산망 복구작업과 함께 민원서비스 마비 사태를 불러온 원인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공무원 인트라넷인 '새올'과 '정부24'가 다른 서버를 사용하고 있으나 동일한 사용자 인증 절차를 거치는 탓에 동시에 먹통이 된 게 아니냐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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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