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뛴 국산우유보다 30% 싸다" 요즘 눈에 확 띈 '고소한 우유'
직장인 이모(36)씨는 최근 폴란드산 멸균유를 사마시기 시작했다. 국산 우유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이 커져서다. 이씨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멸균유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주변에서 괜찮다는 의견을 많이 접하고 마셔보게 됐다”며 “국내 신선우유보다 살짝 기름지지만, 맛이 고소하고 가격이 저렴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산 우유 가격이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값싼 해외 우유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대대적인 ‘우유 물가 잡기’에 나섰지만, 원윳값 가격 결정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우유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14.3% 올랐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20.8%) 이후 14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우유 물가가 크게 치솟은 것은 지난 7월 낙농진흥회에서 음용유용(마시는 우유)용 원유 기본가격을 L당 88원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유업체들도 잇달아 흰우유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 멸균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날 세종의 한 대형마트를 찾아가 보니 서울우유협동조합의 ‘나100%우유’(1L)는 2990원인 반면, 같은 용량의 폴란드산 멸균유인‘믈레코비타’와 ‘갓밀크’는 1000원 저렴한 199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해외에선 젖소를 방목해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룟값 등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든다. 마트 관계자는 “여전히 국산 우유 소비가 많긴 하지만, 최근 해외 멸균유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멸균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수요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리서치 기업 메타서베이가 10~70대 남녀 소비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5.8%가 ‘비싼 가격 때문에 흰 우유 대신 멸균유를 구매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과거엔 멸균유가 신선우유에 비해 영양소가 적을 것이란 인식에 꺼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가격 측면에서 멸균유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해외 멸균유의 인기는 매년 빠르게 늘어나는 수입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산 우유 수입량은 3만1462t으로, 전년 대비 35.1% 올랐다. 5년 전인 2017년(3440t)과 비교하면 9배가량 급증했다. 원래 해외 멸균유는 카페 등에서 제품 원료로 주로 사용됐지만, 최근 가정용 소비까지 늘어나면서 수입량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오는 2026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과 유렵연합(EU)산 우유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해외 멸균유 수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미국산과 EU산 우유는 각각 7.2%·6.8%의 관세율이 적용되는데, 매년 순차적으로 인하돼 3년 뒤엔 0%가 된다. 국산 우유는 점점 비싸지는 동안 값싼 해외 멸균유가 유입되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올해부터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도입해 원윳값 인상 폭을 실수요에 맞춰 최소화하고, 우유 포함 7개 품목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도록 하는 등 우유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원윳값 결정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돌아가지 않고, 낙농가를 돕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대표적인 가격 왜곡 사례”라며 “시장 원리에 맞게 원윳값을 결정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그 과정에서 어려워지는 영세 낙농가는 컨설팅 지원 등을 통해 사업 전환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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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