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주석중 교수 유품은 '라면 스프'…유가족 울린 그의 연구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장남이 유족을 대표해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주 교수가 식사 시간조차 아까워 생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교통사고로 숨진 고 주석중(59)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영결식이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장남 주현영씨가 추모객들에게 전한 감사 메시지를 공개했다.

주현영씨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비통했지만,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장례를 마치고 며칠 후 유품을 정리하러 연구실에 갔었다.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신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들과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데 다시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주현영씨는 "책상 아래 박스에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다.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며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 아팠다"고 전했다.

또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들 기피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셨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떡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시 한번 귀한 걸음 하셔서 아버지 가시는 길 배웅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병원 10분 거리에 살면서 응급 수술을 도맡았던 주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1시 20분쯤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패밀리타운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주 교수는 지난 2020년 서울아산병원에서 대동맥질환 전담팀을 꾸려 대동맥 박리를 치료해 수술 성공률을 약 98%까지 높였다는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대동맥 박리는 찢어진 대동맥이 파열될 우려로 초응급 수술이 필요하고 수술 자체도 고난도라 치료가 매우 어렵다.

주 교수의 사망 소식에 노 전 회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서 "국내 대동맥수술의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라며 "유능한 의사의 비극은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이겠지만, 인간의 마음으로는 너무나 슬픈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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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