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판·검사 로비' 정황, 실명까지 나오는데…공수처 "수사 어려워", 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씨가 고위 판·검사들에게 로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나는 가운데, 판·검사 사건 공소권을 가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에 난색을 내비치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장동 사건의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에는 고위 검사의 이름이 곳곳에 등장한다. 대장동 일당이 검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무혐의로 종결하겠다고 얘기했다", "김만배씨가 모 검사장과 정말 친하더라" 등의 발언을 한 것이다.
녹취록에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대장동 일당의 대화·통화 내용이 담긴 만큼, 이들이 오랜 기간 법조계 로비를 통해 각종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이 자연스럽게 일고 있다.
검사뿐만 아니라 고위 판사들도 김씨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대장동 수사팀은 김씨가 2017년 당시 부장판사였던 B변호사, C판사와 술자리를 가진 뒤 술값을 지불했다는 진술을 술집 직원으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법조인들은 대장동 일당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하는 상황이다. C판사의 경우 "중간에 자리를 떴으므로 술값을 누가 계산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의 법조계 로비 의혹은 당초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의 쟁점은 아니었지만, 정치·언론·법조계에 전방위 로비를 펼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판·검사에 대한 기소권을 가진 공수처는 '단순 정황만으로 법조인들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로비를 받은 것인지 녹취록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단순 정황만으로 인지 수사를 개시하긴 어렵다"며, "정식 사건화를 하려면 고발장이나 진정서를 통해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형식적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공수처에 관련 고발장이 접수되면 내사 등을 거쳐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공수처는 대법원장,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이 재직 중 본인 또는 가족이 저지른 고위공직자범죄 및 관련 범죄에 공소권을 가진다. 지금은 판·검사가 아니더라도 사건 당시 현직에 있었다면 수사가 가능하다.
일각에선 공수처가 수사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현직 변호사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명목으로 설치된 공수처가 정치적 이슈에 휘말릴까 봐 너무 몸을 사리고 있다. 법조계 로비 정황이 계속 나오는데도 수사 의지가 없다"고 했다.
현재 검찰은 대장동 일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접점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어 법조·언론계 로비 의혹 수사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검찰 내부에선 김씨의 로비 의혹이 대장동 사건 수사의 본류가 아닌데 연일 부각되자 부담을 갖는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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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