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시켜서 범법자가 됐습니다"…女사장의 한숨
"올해부터 저는 범법자가 됐습니다. 주당 52시간 근로제(이하 주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본제국시대도 아니고 사업주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새벽시장에 갔다가 2시간 자고 왔습니다. (정부가)사업자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거죠."(경기도 일산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구경주 이플러스 마트 대표)
"주당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이하 8시간 연장근로제)가 일몰 됐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주저 앉았습니다. 가정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어떤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투잡(겸업)을 해야 할 것 같고 본업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범법을 저지른 회사에서 떳떳하게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요식업 브랜드 남다른 감자탕 운영사 보하라 장택한 과장)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 '근로시간제도, 왜?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에선 일률적인 주52시간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중소기업계는 지난해말 8시간 연장근로제 일몰을 앞두고 연장을 촉구했으나 여·야 합의가 결국 불발됐다. 이날 토론회는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앙회)와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 공동주최로 마련됐다.
이날 중소벤처기업·소상공인 단체 9곳은 호소문을 통해 "수많은 영세사업장은 근로시간 제약에 막혀 일감을 포기하고,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며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장과 맞지 않는 주52시간제의 한계를 직시하고 제도의 근본적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앙회는 호소문과·토론회 내용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8시간 연장근로제가 일몰되면서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곤란한 처지로 내몰렸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주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려워 범법자로 내몰린 사업주들은 정책보완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급여가 줄면서 오히려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근로자도 있었다. 민생법안을 정쟁에 악용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중소기업계는 주52시간제의 확대 적용을 위해 도입된 8시간 연장근로제 기간을 늘리거나, 영구화 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당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열어준 예외규정이지만, 근본적으로 주52시간제 자체가 현장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지적이다. 정윤모 중앙회 상근부회장은 "근로시간 제약에 막혀 일감을 포기하고,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라고 강조했다.
업종·규모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주52시간제를 강제도입해 부작용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인환 중앙회 부회장(정일현대자동차정비공업 대표)은 "주52시간을 지키고 있지만, 업무량이 많을 때 어떻게 할 수 없다. 8시간 연장근로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거 딱 한가지다. 자동차를 빠르게 수리해 줘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주52시간제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송유경 경기·남부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양감월드 대표)은 "8시간 연장근로제 일몰을 대비할 현실적인 시간이 없었다. 몸을 써야 하는 업무라서 이직률도 높다. 3중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영세기업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토론회 개회사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는지가 중요하다.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자영업 현장에서도 일률적인 근로시간제도로 인한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고용노동부에서 계고기간 줬지만, 처벌하지 않겠다는 거지 불법을 바꾸지는 못한다"며 사업주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토론회 발제는 이상희 한국공학대학 교수, 이승길 아주대 교수가 각각 '중소벤처기업 근로시간제도 개편의 필요성과 과제'와 '근로시간제도 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진행했다. 이상희 교수는 "한국은 일본·프랑스 등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승길 교수도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는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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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