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비상, 샤인머스캣의 추락
딸기의 계절이 왔다. '딸기는 봄 아니야?' 싶겠지만, 국내 공급량 85%를 차지하는 품종 '설향(雪香)'부터 겨울 분위기를 풍긴다. 11월 말부터 본격 출하해 3월에 공급량 정점을 찍는다. 서울 가락시장 딸기 반입량을 보면 물량 75.8%(16,833만 톤)가 11월~3월에 집중됐다. 국립식량과학원 고랭지농업연구소 이종남 박사는 "딸기는 호냉성(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이라서 추울 때 더 맛있다"라면서 "제철을 봄으로 잘못 아는 건 1980년대 이전엔 빛·온도·습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없어 봄에 키워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딸기는 과일이 아니다. 줄기에서 열리는 특성 탓에 부가가치세법상 열매 채소(과채류)로 분류한다. 법이 어떻든 우리는 식사 중 먹으면 채소, 후식으로 먹으면 과일로 본다. 이런 기준에서 딸기는 겨울 과일 매출의 압도적 1등이다. 지난해 한 대형마트에선 12월~1월 딸기 매출만 300억 원이 넘었다. 전체 상품 중 라면 다음으로 많이 팔렸고, 우유와 맥주·와인 매출을 뛰어 넘었다.
올해 1월 딸기는 수확량이 줄어든 탓에 '금값'이었다. 이번 겨울도 비슷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1월 딸기 도매가격을 2㎏에 79,422원(상품 기준)으로 집계했다. 전년 동월(34,299원) 대비 두 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농촌 고령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 근로자 부족 등으로 출하면적이 10% 줄어든 게 영향을 끼쳤다. 12월 출하면적도 4% 줄어들 전망이다.
젊은 층의 딸기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식품업계는 하얀 눈 이미지에 빨간 딸기가 식감을 자극한다고 보고 겨울이면 관련 마케팅을 강화한다. '인스타 성지' 딸기 뷔페도 채비를 마쳤다. 서울 반얀트리클럽&스파는 다음달 2일부터 운영하는 딸기 뷔페 가격을 성인 기준 82,000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69,000원)보다 18.8% 비싼 가격이다. 서울 롯데호텔도 딸기 뷔페 가격을 지난해 성인 63,000원에서 올해 89,000원으로 41.3% 올릴 예정이다.
우리 딸기는 대표적 수출 효자 품목이다. 지난해 5,000톤 가까이 수출돼 6,470만 달러(840억 원 규모)를 벌었다. 금액 기준으로 전년 대비 20.3% 늘었다. 주요 수출국은 홍콩(33.5%), 싱가포르(23.8%), 태국(13.7%), 베트남(11.4%), 말레이시아(6.6%) 순이다. 경상북도가 개발한 '싼타' 품종은 중국에서 로열티도 받는다.
농식품부와 aT는 딸기 수출을 위해 8개 노선의 전용기도 운항한다. 딸기는 유통기간이 짧고 잘 무르기 때문에 수출 물량 99%를 항공으로 운송한다. 농촌진흥청은 딸기의 선박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최근 CA(Controlled Atmosphere)컨테이너를 개발했다. 온도, 습도,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특수 저장고다.
샤인머스캣의 분위기는 딸기와 사뭇 다르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샤인머스캣 2㎏의 10월 평균가격(상품 기준)은 12,107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하락했다. 대형마트·백화점 청과 매대에 보라색 일반 포도(캠벨)보다 요즘 더 많이 깔린 게 샤인머스캣이지만,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값은 확실히 저렴해졌는데, 당도가 전보다 떨어지고 껍질도 질기다는 평가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희소품종이었던 샤인머스캣은 몇 년 전만 해도 고가에 팔렸다. '명품 과일'로 취급받자 농가들은 너도나도 샤인머스캣을 심었다. 6년 만에 16배 넘게 재배면적이 늘어났고, 올해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48.9% 증가했다. 공급은 많아졌는데 품질 관리는 실패했다.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빨랐는데, 일부 농가에서는 비싼 값을 받기 위해 정상 출하시기보다 앞당겨 시장에 내놓았다. 실제로 요즘 샤인머스캣 당도는 C급 상품의 당도 기준(20브릭스)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딸기와 샤인머스캣은 모두 일본에서 들여왔다. 2005년 딸기의 일본 품종(육보·장희) 국내 점유율은 85%에 달했지만, 지난해 기준 설향과 금실 등 국산 품종 점유율은 96%가 넘는다. 국산화에 성공했고 수출길 탄탄한 '모범생' 딸기에 비해, 샤인머스캣의 갈 길은 멀다.
품질이 가격에 정확하게 반영되는 유통체계가 먼저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라 경매 도매법인들은 수탁을 받으면 등급이 떨어지더라도 거래를 반드시 해야 하는 구조"라면서 "농가들이 미숙과를 내놓지 않도록, 관계 기관과 지역 농협이 출하 지도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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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