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AI, 최태원은 수소 …'사우디 미래비전' 함께 그린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체류시간이 불과 24시간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는 일정을 챙겼다. 빈살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스마트도시 '네옴시티'를 건설하는 데 한국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 원유 중심의 사우디 경제를 미래형 제조업으로 전환하려는 '비전 2030'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한국 기업을 파트너로 삼으려는 복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내 8개 기업 총수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빈살만 왕세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빈살만 왕세자는 1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등 국내 재계 총수 8명과 차담회를 가졌다. 이날 오후 4시 30분부터 롯데호텔에 집결한 그룹 총수들은 빈살만 왕세자와의 미팅이 끝난 오후 7시께 호텔을 나서기 시작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빈살만 왕세자 일정상 차담회 시간이 넉넉지 않고 총수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이다 보니 기업별로 네옴시티 등과 관련해 경쟁력 있는 분야를 간단히 소개했다"며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추후 실무진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회장은 빈살만 왕세자와 네옴시티를 비롯해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협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1조4000억원 규모의 사우디 자푸라 가스 처리시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삼성물산은 사우디 리야드 지하철 공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현대건설과 함께 네옴시티의 철도 '더 라인'의 터널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은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Battery·Bio·Chip)'와 관련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또 네옴시티와 관련해 SK가 강점이 있는 수소 사업, SK에코플랜트의 건설 분야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을 것으로 추정된다. BBC는 SK의 미래 성장동력이자 사우디에서도 관심을 갖는 분야다.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 투자부 장관은 이날 '한·사우디 투자포럼'에서 "사우디는 기술 분야에 관심이 높은 상황으로 SK 등에 사우디 국부펀드(PIF)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정의선 회장은 빈살만 왕세자와 전기차·자율주행차·도심항공교통 등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탈(脫)석유' '스마트모빌리티' 등이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 HD현대, CJ, 두산, DL그룹 등은 이번에 빈살만 왕세자 미팅에 합류해 이목이 집중됐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9년 방한 당시 5대 그룹 총수와 미팅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대상을 20대 그룹으로 확대했다.

김동관 부회장은 태양광과 UAM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무기체계 수출 관련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기선 사장은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와 합작한 조선소 현황을 점검하고 추가 프로젝트를 논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왕세자에게 "오랫동안 여러 사업을 같이 해왔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 미래를 같이 해보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재현 회장과는 문화 사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CJ ENM은 지난 6월 사우디 문화부와 문화적 교류를 강화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박정원 회장은 사우디 현지에서 건설 중인 주·단조 공장, 해수담수화 플랜트, 화력·열병합발전소 건설 관련 현안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욱 회장은 석유화학 사업 투자 협력과 함께 DL이앤씨의 네옴시티 수주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에 참석한 재계 총수들은 사우디 측 요청으로 호텔 15층에서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왔음을 확인한 뒤 빈살만 왕세자가 묵고 있는 호텔 32층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오후 3시께로 알려진 회동 시간은 사우디 측 요청으로 2시간가량 미뤄졌다. 재계 관계자는 "사우디 측 요청이라는 것 외에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한·사우디 기업 간 또는 정부·기업 간 MOU도 26건이나 체결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사우디 투자부 주최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사우디 투자포럼'에서 체결된 투자 계약·협약은 총 300억달러 규모에 달한다.

사우디 국영 정유·석유화학 기업인 아람코를 최대주주로 둔 에쓰오일은 이날 역대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사업으로 꼽히는 '샤힌 프로젝트'에 총 9조2580억원(70억달러)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는 아람코의 한국 투자 중 사상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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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