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에 혼비백산한 시장..정부, 결국 '50조+α' 지원책
금융시장 전반에 '돈맥경화' 확산
당국, 부랴부랴 시장 안정 대책 발표
불시에 터진 강원도발(發) 레고랜드 사태에 혼비백산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당국이 고강도 수단을 동원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보증 이행 거부 이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금융시장 전반에 '돈맥(脈)경화' 현상이 확산될 조짐을 나타내자 '50조원+알파(α)'라는 대규모 자금을 지원키로 한 것이다. 자칫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위기 확산을 시급히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열고 단기자금 시장 안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이 비상 거금회의를 연 것은 지난달 22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이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단기 자금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기준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는 4.30%를 기록, 금융위기였던 2009년 1월21일(4.38%)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회사채 AA- 등급 3년물 금리와 BBB- 등급 3년물 금리의 경우 강원도가 레고랜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 기업회생을 신청한 지난달 28일만 하더라도 5.342%, 11.202%였으나 지난 21일 기준 5.736%, 11.591%로 치솟았다.
레고랜드 쇼크는 장기 금융시장으로도 옮겨붙는 양상이다. 지난 21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4.632%로 급등했다. 2011년 3월8일(4.68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추 부총리를 비롯해 당국 수장들이 회의를 열고 부랴부랴 시장 안정 대책을 공표한 배경이다.
추 부총리는 회의를 마친 뒤 "최근의 회사채 시장과 단기 금융시장의 불안심리 확산과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시장안정조치에 더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α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채권시장안정펀드를 20조원 규모로 운용하고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과 P-CBO 발행 규모를 16조원으로 확대하며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는 3조원을 △유동성 위기에 노출된 부동산 PF 사업 보증 지원에 10조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내일(24일)부터는 시공사 보증 PF-ABCP 등 회사채·CP 매입을 재개하고, 11월 초부터는 캐피탈콜(펀드 자금요청)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한은은 유동성 지원을 위해 대출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국채 이외에도 공공기관채, 은행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오는 2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할 방침이다.
이 총재는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를 활용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을 두고서도 "이번 대책에는 빠졌지만 앞으로 이번 방안이 시장에 미칠 영향과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금통위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한은이 자금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사실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란 수단을 거의 다 끌어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이번 발표에 앞서 일각에선 대규모 유동성 지원이 자칫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고수익을 노리고 부동산 PF 시장에 대거 뛰어든 증권사를 지원하기 위해 당국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형국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화당국인 한은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며 긴축에 나선 상황에서 유동성 지원이 정책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오늘 발표한 시장 방안은 최근 ABCP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진 상황에 대한 미시적 조치"라며 "거시적 측면에서의 통화정책에 대한 운영과 배치되거나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은행을 중심으로 한 자금순환에 큰 문제가 있지 않으며 CP 시장을 중심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시 통화정책의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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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