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원 해고한 푸르밀 회장의 한숨 "방법 좀 가르쳐달라"

고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넷째 동생으로
1978년 설립된 롯데우유서 분리 독립
"우유 산업은 근본적으로 안 되는 상황"
최근 4년 내리 적자..활로 모색도 실패
유업계 "한계기업 정리 신호탄" 해석도


“(회사를 살릴) 방법을 좀 가르쳐 주세요. 우유 산업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안 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3등 회사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자산을 매각해서 될 게 아니에요.”

18일 오후 5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유제품 전문기업인 푸르밀 본사. 신준호(81) 푸르밀 회장은 퇴 실질적인 회생 방안이 없다며 이렇게 되물었다. 표정과 말투는 담담했으나 “(직원보다) 제가 걱정이 제일 많다”고 말할 땐 조용히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전날 푸르밀은 신동환(52) 대표이사 명의로 전 임직원 350여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다음 달 30일자로 사업을 종료하고, 정리해고를 한다고 통보한 상태였다. 수년째 이어진 경영 악화에 오너 경영인이 하루아침에 백기를 들자 회사는 ‘초상집’이 됐다.


신 회장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으로, 푸르밀은 1978년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한다. 2007년 분리 독립해 이듬해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고, 그동안 ‘가나초코우유’ ‘비피더스’ 같은 제품을 생산해왔다. 2018년엔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취임해 부자(父子) 경영 체제로 운영돼 왔다. 다음은 신 회장과 일문일답.

-갑자기 사업 종료와 전 직원 해고 통보를 했는데.
“(직원들도) 걱정이 많겠지만 나는 직원들보다 10배 더 걱정이 많다. 끝까지 (회사를 살릴) 노력은 해 보겠다.”

-매각이나 자구책 마련 등 다른 방법은 없었나.
“방안이 있다면 왜 그렇게(사업 종료) 하겠나.”

-부동산 매각을 통해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내부 의견도 있던데.
“잘 알겠다. ……. 내가 제일 걱정이 많다.”

이날 문래동 본사 인근에서 만난 회사 직원들은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직원 A씨는 “회사가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박하게 해고를 통보할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특히 40대 중반 이상 나이 든 사원은 이직도 어려우니 더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오늘 회장과 대표가 모두 출근했는데 직원들에게 처우 관련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며 답답해했다. 이 회사는 퇴직금 외에 추가로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간부급인 C씨는 “아직은 대형마트 납품 계약이 남아있어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푸르밀은 올해 말까지 이마트·홈플러스·CU·이마트24 등과 자체브랜드(PB) 공급 계약을 맺고 있어, 이들은 다른 거래선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오너 경영의 실패라는 주장도 나온다. 신 대표가 취임한 2018년부터 4년 내리 적자를 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영업적자는 15억→89억→113억→124억원으로 불어났다.〈그래픽 참조〉 같은 기간에 매출은 20% 이상 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은 500%가 넘으니 회사 경영은 진작에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다.

그만큼 유업계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남양유업과 풀무원다논 등이 적자 상태다. 일부 경쟁사는 건강기능식품 같은 신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푸르밀도 가만히 손만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신 대표는 2019년 신규 채용을 늘리고 전주·대구 공장 설비를 증설했다. 이런 사실을 평가 받아 고용노동부로부터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적인 히트 신제품을 내지 못하면서 추락했다.

이에 따라 노조를 중심으로 “오너가의 경영 실패를 직원에게 떠넘긴다”고 주장하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문래동 본사 부지(4618.9㎡)가 800억원대, 부산 해운대 부동산을 포함해 1200억원가량의 자산이 남아있어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에선 한때 LG생활건강이 푸르밀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LG생건 측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힐 수는 없으나 푸르밀 인수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공인회계사는 “푸르밀의 유동부채가 600억원인데 보유 현금은 45억원에 불과하다”며 “회사가 감당할 수준이 안돼 보인다. 자산을 매각해도 대주주에게 돌아갈 돈이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만큼 유업계의 미래가 암울해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며 “이번 푸르밀 사태가 ‘한계 기업’이 무너지는 사태의 신호탄이 아닌지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푸르밀 지분은 신 회장(60%)과 신 대표(10.0%) 등 오너 일가가 9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신 회장의 사위다. 신 회장 일가와 관계사로 대선건설·세양월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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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