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제로인데..선거 때마다 판치는 '철도망 공약'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사업
100원 투자하면 25원 효과
예비타당성조사서 부적격 판정
평택부발선 등 전체 사업의 13%
사전·예비 타당성 문턱도 못 넘어
정부, GTX 조기 개통 공언에도
업계 "수익성 문제로 입찰 저조
사업 장기간 지연될 것" 우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C 노선을 포함해 정부가 2016년 발표한 ‘3차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 사업의 90%가량(사업비 기준)이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첫 삽도 뜨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성 점검 없이 선거를 의식해 무리하게 끼워 넣은 선심성 철도 건설 약속이 공수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한국경제신문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국가 철도망 계획 진행 현황’ 자료에 따르면 3차 국가 철도망 계획에 포함된 신규 사업 36개 중 29개가 착공조차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비(2016년 발표 당시 기준)로 따지면 총 50조8464억원 중 87%인 44조3943억원에 해당하는 사업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집행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체 사업 중 13%(6조4910억원)는 사업 첫 단계인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정부가 5년마다 발표하는 국가 철도망 계획은 향후 10년간(3차는 2016~2025년)의 신규 철도 노선 계획을 담은 청사진이다. 이 계획에 포함되지 않으면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 정부는 작년 7월 GTX-D 노선 등이 들어간 4차 국가 철도망 계획을 발표했다.
3차 철도망 계획 중 주요 미착공 노선은 수도권 교통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계획한 GTX-B·C와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원종홍대선, 일산선 연장, 위례과천선 등이다. 이들 노선은 철도망 계획 발표 이후 ‘교통 호재’가 부각돼 해당 지역 집값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국토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속도전’을 지시한 GTX-B·C 노선의 조기 개통을 공언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GTX-E·F 노선 조기 신설을 위해 2026년 내놓을 예정이던 5차 국가 철도망 계획을 2년 앞당겨 2024년에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수조원이 투입되는 철도망 계획의 이행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년前 세운 철도사업 90%, 첫삽도 못 떴다
GTX-B·C, 신분당선 연장 등 36개 사업중 29개 착공도 못해
서울 용산역과 경기 고양시 삼송역을 잇는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사업은 2016년 ‘3차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포함됐지만,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업 첫 단계인 예비타당성조사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2019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B/C·비용 대비 편익)이 0.25로 나와 ‘사업 추진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100원을 투자하면 25원의 효과만 본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노선을 변경해 올초 예비타당성조사를 재신청했지만 여전히 경제성이 낮아 당초 목표인 내년 착공, 2030년 준공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건설업계 의견이다. 예상 사업비도 3차 2016년 철도망 계획 발표 당시 1조2119억원에서 2조211억원으로 67% 급증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사업처럼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데도 선거를 앞두고 지역민 표를 의식해 무리하게 구축 계획을 세워 놓은 철도망 사업이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10곳 중 1곳, 예타도 못 넘어
철도망 구축 사업은 사전 타당성조사→예비타당성조사→기본계획 수립→실시 설계→착공 순으로 진행된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차 국가 철도망 계획에 포함된 36개 신규 사업 중 착공한 사업은 단 7곳에 불과하다. 사업비(2016년 발표 당시 기준)로 치면 전체 50조8646억원 중 13%(6조4521억원)에 해당한다.
반면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평택부발선(평택~부발, 사업비 1조6266억원), 충청권 광역철도(신탄진~조치원, 5081억원) 등 전체 사업의 13%(10개 사업)는 사전 조사나 예비타당성조사 문턱도 넘지 못했다. 기본계획과 실시 설계에 적어도 3년 이상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 사업은 3차 철도망 계획 완료 시점인 2025년까지도 첫 삽을 뜨기 어려울 전망이다.
19개 사업(사업비 기준 전체의 75%)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고도 지방자치단체 및 주민 반발과 건설 자재값 상승 여파로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와 서울 홍대입구역을 잇는 원종홍대선(현 대장홍대선)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국가 재정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경기도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서울시 간 의견 대립으로 수년간 사업이 표류하다가 2020년에야 민자 사업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지난달 민자 사업자 선정 공고를 내고 연말까지 시공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낮은 경제성과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입찰이 유찰돼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현대건설을 제외하고는 시공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사가 없는 상황”이라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등 대형 철도망 사업이 동시에 발주된 상태라 사업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자 사업으로 추진되는 위례과천선(복정~경마공원, 1조2245억원)은 3차 철도망 계획과 4차 철도망 계획(지난 7월)에 연이어 반영됐지만 신설역 추가, 노선 수정 등 지자체와 주민 간 이견으로 수년째 계획만 세우고 있다. 민자 적격성 조사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사업자 선정 난항 겪는 GTX-B
3차 철도망 계획에 포함된 GTX-B·C 역시 정부가 연일 “조기 착공에 사활을 걸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현실성 없는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2024년 착공을 약속한 GTX-B 노선(송도~마석)은 재정 사업 구간(용산~상봉)에 이어 민자 사업 구간(송도~용산, 상봉~마석)도 참여 업체 수 부족으로 사업자 선정 입찰이 유찰될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재정 사업 구간 입찰은 국가철도공단이 지난 8월 사전 심사 신청을 받은 결과 전체 4개 공구 중 3개 공구가 참여 업체 수 미달로 유찰됐다. 대형 국가 사업은 2개 이상 사업자가 참여해 경쟁 입찰이 돼야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다.
민자 구간은 당초 경쟁을 예고한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 현대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기 어렵게 됐다. 내년 착공 목표인 GTX-C(덕정~수원·상록수) 노선도 강남구 대치동 우회와 일부 구간 지하화 문제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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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