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물 탈 여력 없다"..거덜나는 계좌에 절규하는 가계

[무너지는 자산시장]
◆벼랑 끝 가계경제
개미 순매수 상위 5개 종목 -27%
하락장 줍줍하다 '반대매매' 위기
비트코인도 3000만원 붕괴 패닉
주담대 부담 늘고 집값마저 흔들
삼각 파고에 '빚투족' 발등의 불


“연봉만큼 마이너스통장에서 빚을 내 국내 성장주와 해외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매수했습니다. 살 때마다 이제는 바닥이겠거니 여겼는데 이제는 ‘물타기’ 할 여력도 없는 지경입니다.” (30대 직장인 이 모 씨)

“지난해 10월 코인 투자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이익을 한번 맛보니 욕심이 나서 카드론과 신용대출로 약 7000만 원을 끌어 모아 코인이 떨어질 때마다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날리게 돼 통장에 몇 십만 원밖에 남지 않아 개인회생 절차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34세 직장인 A 씨)

미국발 인플레이션·긴축 강화 공포에 거의 모든 종류의 자산 가격이 일제히 내리꽂히는 가운데 그동안 국내외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에 투자했던 개인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하락장에서도 ‘무한 매수’에 나서온 개인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식을 팔고 있으며 코인 역시 청산을 당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손절에 나서는 상황이다. 빚내서 집을 산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음)’도 ‘금리 발작’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집값마저 하락 조짐을 보이면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투자자들이 순매수한 상위 5개 종목(삼성전자·네이버·카카오·SK하이닉스·삼성전기)의 평균 손해율은 26.98%로 나타났다. 올 들어 4월까지 줄기차게 주식을 사들였지만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주가가 추가 하락하자 지난달 3943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며 순매수 행진을 멈췄다. 이달 들어서도 반짝 순매수에 나섰지만 이날에는 559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서학개미들의 계좌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인 해외 주식 상위권 종목들의 손해율은 최대 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테슬라의 경우 하락률이 38.76%에 이르며 나스닥100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의 하락률은 72.25%에 달한다.

암호화폐 시장은 ‘핵폭탄급’ 충격을 받아 투자자들의 한숨을 깊게 한다.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올 3월 4만 9000달러에서 2만 3000달러 아래로 주저앉으면서 2030 투자자들은 패닉 상태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3월에 발표한 ‘2021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암호화폐 실제 거래 인구는 약 558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040 비중은 전체 투자자의 82%였다. 20대 134만 명(24%), 30대 174만 명(31%), 40대 148만 명(27%) 등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B 씨는 “올해 초 1억 원대였던 순이익이 하락장에 5000만 원으로 고꾸라지자 급한 마음에 5월께부터 코인 ‘루나’ 5배 쇼트 거래에 나섰는데 청산당했다”며 “이후 코인 ‘APE’에 걸었던 3배 쇼트도 반등에 청산됐다”고 밝혔다. B 씨는 “시드 자금이 없어지니 비상금을 약 600만 원 넣었는데 이마저도 모두 날려 대출 1500만 원으로 다시 거래에 나섰지만 현재 500만 원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빚을 내 주식과 코인·부동산에 투자하던 ‘영끌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선 주식시장에서는 반대매매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반대매매는 고객이 증권사의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고 난 뒤 약정 기간 내 변제하지 못할 경우 의사와 상관없이 주식을 일괄 매도하는 매매다. 지난달 말 120억 원이던 반대매매 금액은 13일 166억 원으로 치솟았다. 이날 개인은 코스피에서 389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데 반해 코스닥에서는 98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는데 상당량이 반대매매 물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담보 부족 계좌가 지난달에 비해 6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추후 반대매매가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 부담에 가계의 고충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말 기준금리를 2%까지 올릴 경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7%에 육박하며 ‘영끌족’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 금리 4%로 4억 원을 30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으로 빌린 경우 월 원리금은 191만 원, 총 대출 이자는 2억 8748만 원인데 금리가 7%로 오르면 월 원리금은 266만 원, 총 대출 이자는 5억 5804만 원으로 급증한다. 한 달 이자만 75만 원, 총 대출 이자는 2억 7056만 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여기에다 집값 상승에 대한 피로감에 매매 심리까지 위축되며 서울 외곽 및 수도권 집값도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긴축 강도가 갈수록 거세지며 현재 자산 시장의 하락세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빚투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 구간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반대매매처럼 손실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질 수 있어 빚투 규모가 큰 투자자들은 가급적 조속히 청산을 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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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