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發 정계 개편 시침 돌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분당 수순을 밟고 있다
친명과 친문, 파열음의 전조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분당될 것이다. 애당초 대장동 이슈도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쪽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하면서 크게 이슈화했다고 봐야 한다. 당한 쪽은 감정이 좋을 리 없고, 문제를 제기한 쪽도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지만은 않겠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민주당이 분당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레 여소야대 정국이 극복되는 셈이니까.”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민주당의 미래를 묻자 이런 답을 내놨다. 서로 이질감이 짙은 두 덩어리의 권력집단이 어떤 기폭제만 생기면 파열음을 내며 갈가리 찢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낙(친이낙연)계의 대립 구도를 띠고 있다. 실제 전선은 친명과 친문(친문재인)계 사이에 그어져 있다. 2024년 총선과 2027년 대선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주류 교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밑천은 득표력이다. 대통령선거에서 1614만7738표(47.83%)를 얻었다. 민주당 역대 대선후보 가운데 최다 득표자다. 윤 당선인과의 격차는 24만7077표(득표율 0.73%포인트)에 불과하다. 민주당에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는 점도 존재감을 돋보이게 만든다. 친문 적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감돼 있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70대에 접어들었다.
비주류이던 친명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대선 보름 뒤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명 박홍근 의원(3선·서울 중랑을)이 친문 박광온 의원(3선·경기 수원정)을 꺾었다. 친문의 위상이 공고하던 1년여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박 원내대표는 대선 당시 이 고문의 경선캠프에서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에 ‘이재명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때만 해도 계파 갈등은 수면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정당이 굳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할 이유는 없다. 박 원내대표가 이 고문의 측근이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친명 직계로 볼 수 없다는 해석도 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송 전 대표의 출마 배후에 이 고문이 있다는 시각이 퍼지면서 당내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친문으로선 투쟁거리가 생겼고 명확한 타깃도 설정됐다.
4월 6일 민주당 내 친문 싱크탱크로 알려진 ‘민주주의 4.0’ 이사진은 입장문을 내고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송영길 전 대표의 명분도 가치도 없는 내로남불식 서울시장 출마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어 “대선 패배를 ‘졌지만 잘 싸웠다’로 포장하고 ‘인물 부재론’이라는 아전인수 격 논리로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며 “국민은 이를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오만하다고 여길 것”이라고도 했다.
입장문에서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는 이 고문의 대선 성적표를 수식하는 말로 사실상 ‘공인’이 된 상태다. 그럼에도 이를 놓고 친문 싱크탱크는 ‘포장’이라는 낱말을 썼다. 자칫 송 전 대표가 아닌 이 고문을 겨냥했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결국 프레임 싸움”이라면서 “더 크게 졌을 선거인데 선전했다는 쪽과 이낙연 전 대표가 나왔으면 이겼을 것이라는 쪽의 논쟁”이라고 했다.
입장문에는 도종환 이사장을 포함해 강병원·고영인·김영배·김종민·맹성규·신동근·이광재·정태호· 최인호·최종윤·한병도·홍영표 의원 등 13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상당수는 지난 대선에서 이 전 대표나 정세균 전 총리 캠프에 합류했다.
가치의 부재는 또 다른 뇌관이다. 2000년대만 해도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은 진보 정체성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던 정당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을 밀어붙여 민주노동당과 불화했다. 그러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하며 친환경 무상급식, 사회서비스 일자리 100만 개 창출, 비정규직 지원 강화, 대형마트·직영 대기업슈퍼마켓(SSM) 허가제 등 진보정당의 의제를 대거 수용했다.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진보 가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더 넓은 정치적 울타리를 형성한 거다.
이후 진보 의제에 강한 86세대(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운동권이 당내 주류를 꿰찼다. 각각의 뿌리가 친노무현계, 친김근태계(GT계) 등으로 달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로 범(汎)친문을 형성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의 핵심 어젠다가 남북관계, 소득주도성장, 검찰개혁, 부동산 세제(稅制) 강화, 탈(脫)원전 등으로 채워진 점도 이 같은 사정과 무관치 않다.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을 고려해서인지 이 고문의 대선 캠페인은 ‘탈(脫)가치’의 성격을 띠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통일을 지향하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2021년 11월 20일)라고 말하는 등 친문이나 기성 민주당의 기류와는 다른 발언을 쏟아냈다. 거시적인 가치보다 특정 세대·계층을 겨냥한 소소한 생활 공약에 무게를 실었다. 한편에서는 실용주의라 했고, 또 한편에서는 국정 철학 없이 여론만 뒤따른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시절 가치에 있어서는 민주당을 견인했던 정의당도 뚜렷한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정치학) 교수는 “지금 민주당은 가치 측면에서 크게 변화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진보성향 정치학자로, 2012년 총선 때는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인터넷소통위원장으로 일한 적도 있다. 그의 진단이다.
“이번 대선의 경우, 가치에 입각한 선거라기보다는 (선대위가) 그때그때 실용적으로 대응한 성격이 짙었다. 민주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점에서 심각한 위기다. 마지막에 20·30 여성들이 표를 몰아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0.73%포인트 격차라는 아슬아슬한 박빙 승부가 오히려 독이 됐다. 현재의 민주당은 뉴노멀 등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어젠다를 선도하기도 어렵다. 정의당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정의당의 경우 장혜영 등 신진이 영입됐지만 아직까지 주류는 수십 년 전 감각에 머물러 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넥스트 리더십도 보이지 않아 위기가 굉장히 길게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이 고문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는 화약고 그 자체다. 친명과 친문, 친낙, SK계(친정세균)가 서로 뒤섞여 우격다짐을 할 소지가 생긴다. 친문이 스스럼없이 이 고문에게 당권을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면 박범계(3선·대전 서구을) 법무부 장관, 전해철(3선·경기 안산 상록갑) 행정안전부 장관 등 친문에서도 당권 후보군이 넓어진다.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4선·인천 부평구을) 역시 유력한 당권 주자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이 고문이 2년 뒤 열릴 차기 전당대회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고도 보지만 숫자상 소수다. 무엇보다도 이 고문 처지에서는 지금이 복귀의 적기다. 상대 계파(친문)의 수장이 곧 퇴임하는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구심점이 생기기 전이니 당내 세력 구도를 개편하려는 이 고문에게는 기회 요인이다. 무엇보다 차기 당 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쥔다.
이 고문은 당내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권 재도전’은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설사 분열의 씨앗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실기(失機)하는 것보다야 낫다는 결론을 낼 공산이 크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이 고문 처지에서 보면 당연히 지금 돌아와야 한다. 시간이 더 늦어질수록 비주류이기 때문에 친문한테 완전히 가려 존재감을 잃게 된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은 ‘프로젝트성 원 팀’을 이뤘는데, (당내 계파 간) 화학적 결합이 안 돼 있었다는 뜻이다. 향후 민주당은 상당히 깊은 분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프로젝트성 원 팀’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을 결속시킨 요인은 엄밀히 따지면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에 대한 거부감과 배신감이 계파 간 전략적 연대를 가능케 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윤 당선인의 행보에 따라 ‘프로젝트성 원 팀’이 다시 가동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예컨대 4월 13일 전격 발표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 같은 경우가 그렇다. 친명과 친문이 ‘한동훈 낙마’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결집할 수 있다.
결집의 지속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신율 교수는 “한동훈 법무장관 내정은 상대편에게 엄청난 도발로 읽힐 수 있다”면서도 “이로 인해 (민주당 내 갈등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는 있지만 권력다툼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차기 대권 도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보니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문재인 당시 국회의원과 친노는 2012년 대선 패배 후 2년간 당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외려 비노의 얼굴 격인 김한길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돼 친노 색채에서 탈피를 시도했다. 김 대표는 이듬해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와 합당을 선언하면서 당내 골격까지 바꿔버렸다. 이에 문 의원이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쥐면서 친노와 비노 사이의 계파 간 간극이 더 또렷해졌다. 결국 같은 해 12월 안철수 대표가 탈당했고, 이어 호남 지역구 비노 의원들이 대거 이탈하는 ‘분당 사태’를 맞는다.
차기 권력의 움직임이 당내 역학 구도를 결정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고문의 8월 복귀는 정계 개편이라는 후폭풍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마침 김한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은 4월 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정치하는 사람이 어떤 당에 속했다가 ‘이 당이 내 정치적 소신을 대변하지 못하는구나, 여기에선 내 뜻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면 다른 시도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계 개편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윤 당선인의 멘토이자 비노·비문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발언의 의미가 작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검수완박’ 정국에 몰입한 사이 여의도의 수면 아래에서는 정계 개편의 시침이 돌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