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사익편취 규제' 코앞···재계 일감 몰아주기용 계열사 400여개 매각 난항 고민

한꺼번에 매물 나오는 탓에 정리 작업 쉽지 않아

재계가 한층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시행을 2개월 앞두고 계열사 정리에 고민하고 있다. 규제 대상 확대로 지분 일부나 전부를 매각해야 할 계열사 수가 400여곳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는 탓이다.

규제가 예고된 지난해 말부터 매각을 진행하는 대기업그룹이 적지 않지만 한꺼번에 매물이 나오는 탓에 작업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결국 적지 않은 대기업그룹이 계열사를 헐값에 팔지도 못해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연말까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지분 매각을 추진·검토하는 기업이 세 자릿수에 이른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대기업그룹 기업이 기존 265곳에서 709곳으로 400여곳 이상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 이상)에 대해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는 12월 30일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20% 이상인 상장·비상장 계열사 및 이들 회사가 50%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를 대상으로 부당이익 제공 금지 규제가 확대 적용된다.


이에 대기업그룹은 관련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규제 적용 전 총수 일가나 관련 계열사의 지분을 매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그룹은 아예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기업에 대해 완전 매각까지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관련 지분을 매입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 대기업그룹이 지분의 소수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매수자 입장에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는 인수·합병(M&A)에 백기사로 나서길 주저하기 때문이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공개된 지난해 10월 당시 56개 상장사가 10조7891억원의 지분을 매각해야만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해당 지분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원매자를 찾기 어려워 헐값에 지분을 넘겨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최근 1년 동안 대기업그룹의 규제 대상 기업 매각에 성공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효성은 지난해 하반기 조현준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했던 개인회사인 갤럭시아코퍼레이션의 매각에 성공했다.

그러나 IB업계 등에서는 아직 원매자를 찾지 못해 매각 작업이 지연되는 기업이 더욱 많다는 후문이다. 실제 GS그룹은 내부거래 논란을 피하기 위해 GS아로마틱스와 그 자회사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원매자가 없어 절차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파악된다.

더 큰 문제는 규제 적용 시점까지 미처 지분을 정리하지 못할 경우 자칫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국세청의 추징세액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실제 2016년 775억원 수준이던 추징세액 규모는 2019년 2136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 주요 기업들 다수가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직 계열화된 상황에서 계열사의 내부 거래를 금지할 경우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총수나 계열사의 지분을 정리하더라도 지배권이 약화돼 외부 세력의 경영권 침탈 행위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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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