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황건적의 난2.

태평교단

몹시 피곤한 하루였다. 사람들이 물러간 후 장각은 평상에 앉은 채로 잠깐 잠이 들었다.
장각은 산에서 약초를 캐고 있었다. 홀연 맑은 바람이 일어나더니 한 노인이 앞에 나타났다.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학창의를 입은 품새가 속인의 자태가 아니었다. 노인이 손짓으로 장각을 불렀다. 산중의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가자, 노인이 책 세 권을 내놓았다.
“나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 한다. 네 뜻이 갸륵해 너를 통해 세상을 구제하려 하니, 이 책을 공부해라. 이 책의 이름은 태평요술(太平要述)이다. 네가 이 책의 내용을 익히면 세상을 구제할 능력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라. 행여 다른 마음을 품으면 반드시 업보를 받을 것이다.”
장각이 세 번 절하고 받자 노인은 홀연히 구름처럼 사라졌다. 장각은 그를 잡으려 버둥대다가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장각은 거록군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글공부에 뜻을 두었으나 학업의 정진은 더디고 주변에 추천해 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효렴이나 무재로 천거 받는 일은 그저 헛된 꿈이었을 뿐이었다. 뒷바라지 해주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하직하고 나자 어린 동생 두 명을 포함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 책무가 그에게 주어졌다. 출사의 꿈을 접고 장각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생 둘을 키웠다. 나무도 해다 팔고 머슴 일도 했다. 장바닥에서 짐을 나르거나 장사 일을 돕기도 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면서도 장각은 항상 꿈을 꾸었다. 장각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거리에 사람들은 너무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각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고통과 굶주림이 없는 세상은 없을까?
동생들이 장성해 스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장각은 시장에서 전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세상이 크게 편안해지는 도를 전한다고 했다. 장각은 그에게서 세상을 태평하게 하는 방법을 담았다는 소책자를 한 부 받았다. 우길이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전하는 ‘태평청령서(大平淸領書)’ 일부를 축약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집에서 읽어보고 나자 장각은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꿈꾸어 오던 세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장각은 어디서 이 도를 배울 수 있을지 수소문했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해가 지나서야 길을 떠도는 장돌뱅이에게서 거록 땅에 남화선인이라는 도인이 ‘태평경’을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장각은 무조건 짐을 싸 남화선인이 거주한다는 곳으로 입산했다.

태평교단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날이 바뀌면 수천 명씩 교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전국에 신도가 수십만에 달해 하나의 조직으로는 관리할 수가 없었다. 주, 군 단위로 대방과 소방을 두어 교단을 관리했다. 대방은 신도가 일만, 소방은 수천에 달했다. 각 방의 우두머리들은 방주 또는 거수라 했다. 전국에 방이 36개로 신도가 수십만에 달했다. 장각이 득도를 한 후, 태평도라는 독자 교단으로 포교를 한 지 불과 십수 년만이었다.
태평도를 창시하기 전에도 장각은 황로의 술을 표방하는 몇 개의 군소 종파에서 도를 펼친 일은 있었지만, 세를 얻기는커녕 이리저리 밥술이나 뜨러 옮겨 다니는 형국이었다. 독립한 후에는 더욱 고생이었다. 따르는 신도가 없어 가족도 잃고 홀로 탁발로 연명하기까지 했었다.

후한 말 어지러운 세상에서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거금을 바치고 태수나 현령으로 나온 지방관들은 임기 내에 밑천을 뽑아보려고 다급한 심정이었다. 군과 현의 구실아치들은 벼슬아치들에게 편승해 축재에 혈안이었다. 무리한 세금징수와 부역, 각종 잡부금이 갈수록 늘어났고 가혹하게 징수되었다. 흉년이 겹쳐 먹고살기가 힘들어진 백성들은 고향을 등지고 유랑민이 되었다. 도적이 판을 치자 선량한 사람들은 더욱 먹고살기가 힘들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역병이 창궐했다. 인심도 각박하기가 이를 데 없어져 남을 돕기는커녕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 되었다.
천하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백성들로 가득했다. 장각은 남을 도왔다. 자신도 굶주리면서도 탁발한 음식을 거리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아픈 사람을 돌보았다. 약초를 캐어 환약과 약물도 만들어주고 정성껏 치료했다. 주변에 친척이 없어 상을 치를 능력이 없는 고아들이나 과부들을 위해 상례를 치러주었다. 그는 산천에 기도했다. ‘힘을 주십시오. 이 질곡에 빠져 고생하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도 누구보다도 혹심한 고난 속에 있었기에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눈길이 따뜻했다.
점차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장각은 남는 물질을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병든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아 주었다. 장각이 배운 태평요술에는 심신을 다스리는 법과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지식이 담겨 있었다. 어느덧 장각의 도가 용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중한 질병에 걸려도 장각의 교당에 가서 기도하고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장각은 몸의 질병보다 마음의 질병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각박함이 지나쳐 살벌해져 있었다. 환자가 오면 사당에 눕힌 후, 향을 사르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게 하고 참회하면 죄를 사하는 뜻으로 부적을 주고 약물을 먹였다. 기적이 일어나서 많은 환자들이 장각의 치료를 받고 나았다. 장각이 신통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교세가 확장되었다. 사람들은 장각이 전하는 도를 태평도라 부르고 그들 태평도인이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광화 연간(178~184년)에 이르러 환제가 직접 매관매직에 나서자 조정의 부패는 더욱 극심해졌다. 매관매직을 국가에서 정식으로 관료의 임용 절차로 삼은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지만, 환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엽기적인 일로 볼 것도 아니었다. 매관매직은 이미 후한 말에 이르러 고착화되었으며 그 이익을 중상시 등 환관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환제가 성년이 되고 정사를 직접 장악하게 되자 그 권한을 직접 행사하기로 결정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은밀했던 거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자 힘이 있는 자들은 누구나 관직 거래에 나섰고 통치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모험가들이 이참에 한몫 잡아보려고 관직 경쟁에 끼어들었다. 관리들의 수탈은 더욱 가혹해지고 외적의 침입은 빈번해졌다. 도적들은 창궐하고 연이어 수재와 한발이 번갈아 나타났다. 기근이 일어나고 질병이 돌았다. 아사자와 유랑자가 속출했다.
이 시기를 맞이하여 장각의 태평도는 더욱 크게 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조정이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니 백성들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태평도에 들어오면 질병을 치료해주고 강도들로부터의 침탈을 막아주었다. 교도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으므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교세가 크게 확장되고 인재와 재물이 모이자 지방 관리들도 태평 교단을 의식하게 되었다. 태평도에 입문하면 지방관의 수탈로부터도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신도들은 마음으로부터 장각을 믿고 따랐다. 어느새 그는 대현량사로 높여 불리어지게 되었다.

교단의 힘이 날로 커지자 간부들을 중심으로 그를 신격화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의 친동생 장보와 장량(張梁)이 가장 열심이었다. 장각은 그 때마다 그들을 제지하곤 했다. 남화노선의 가르침이 그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장각의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점이 있었다. 요즘 들어 그 불편함은 점점 더 크게 자랐다.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가장 빈도가 높게 나타나는 악몽은 커다란 교룡이 그를 감싸고 그의 이마에 뿔이 돋는 꿈이었다. 누런 황룡이었다.

영천에서 업성으로 가는 도중 장각은 내내 몸이 불편했다. 춘삼월에 들어섰지만 갑자기 엄습한 추위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진창길에 가마를 지는 교군들도 고생이었지만, 일정을 늦출 수는 없었다. 양주 대방 마원의 등은 이미 양주, 형주의 황건교도 삼만 명을 업성에 집결해 놓았다. 대규모 종교집회를 개최해 세를 과시하는 한편, 궁중 내의 봉서, 서봉 등의 무리와 협의가 잘 이루어지면 3월 5일을 기하여 안팎에서 일제히 봉기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예주에서 연주, 기주를 거쳐 오는 길에 주와 군 소재지의 관부에는 흰 글씨로 ‘갑자(甲子)’ 두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푸른 하늘이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이 일어서네. 갑자년에 이르면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가마 속에서 장각은 심하게 앓았다. 밤낮으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것이 길인가?’ 눈을 감으면 환청처럼 들려왔다.
‘장각아. 어쩔 수 없단 말이냐. 이 길밖에 없는 것이냐?’
귀에서 들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물었다.
기의는 당초 장각의 뜻이 아니었다. 대체 저들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이 어려운 세상에 이 힘없는 백성들은 어떻게 될까. 과연 얻는 것은 무엇인가. 당초의 뜻은 도를 닦아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었다. 성심을 다하다 보니 추종자가 늘어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도를 전한지 불과 십여 년 만에 신도 수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세가 너무 크다보니 본의 아니게 조정과 지방의 관원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미 사도 양사가 소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장각의 태평도를 해산할 것을 주청한 바도 있었다. 양사가 체직되어 실현되지 않았지만, 최근 사도연1) 유도가 다시 장각의 무리를 처벌할 것을 상주했다. 유도는 심지어 없는 말까지 만들어내어 장각을 공격하고 있었다.
“장각이 경성에 몰래 들어와 조정을 염탐하는 등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형님. 지시만 내리시면 됩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연주, 예주 등 8개 주의 신도들을 36개 방으로 조직했습니다. 큰 방은 수가 일만 명이 넘고 작은 방도 육칠천 명은 됩니다. 지시만 내리시면 각 방주의 영도 하에 일제히 봉기할 겁니다. 황궁에서도 봉서와 서봉 등이 내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원의가 지금 낙양에 가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 올 겁니다. 조정은 썩을 대로 썩었고, 관부는 무능합니다. 안팎에서 일제히 호응하면 어찌 막아내겠습니까. 손바닥 뒤집기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하늘은 우리 편입니다.”
성질 급한 장보가 득달을 했다. 각 방을 맡고 있는 장수들도 어서 하명만 내리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도를 창건한 이래 사람을 살리는 데 뜻을 두었지 사람을 해하는 데 뜻을 두지 않았다. 나의 뜻에 하늘도 감응하여 오늘의 세를 이룬 것이 아니겠느냐? 일의 성패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난을 일으키면 많은 백성들이 죽고 상할 텐데. 이것이 어찌 도인이 취할 길이란 말인가.”
“형님. 백성들은 이미 도처에서 죽고 상하고 있습니다. 수십, 수백만의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의 갈취에 견디지 못해 유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행렬을 따르는 만 명이 넘는 무리들도 대부분은 고향을 등지고 살길 찾고 있지만, 백성들을 위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는 아예 황제가 직접 돈을 받고 관직을 팔고 있지 않습니까. 가격도 다 정해 놓았습니다. 녹봉 이천석의 자사와 태수는 2,000만전, 육백석의 현령은 600만전이 공정가입니다. 지방관들이 돈을 내고 취임해도 언제 잘릴지 모릅니다. 후임자를 임명하면서 또 돈을 거두어야 하니 일 년 이상 재임하는 법이 없습니다. 지방관들은 일 년 내에 본전을 뽑고 또 한몫 잡아야 하니 급하게 백성을 몰아 대고 들볶아서 금품을 착취합니다.
백성들이 생산을 해도 모조리 긁어가 버려 먹고살 것이 없으니 차라리 생업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거나 이리저리 유랑하는 것입니다. 농민들만이 아닙니다. 상인, 공인들도 일부 관부에 붙어서 그들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생업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장사를 하고 물자를 생산해 재산을 모아도 언제 빼앗아 갈지 모르니 어찌 마음 놓고 사업을 하겠습니까. 이제 백성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패국상 왕길의 일을 보십시오. 주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고 세수를 채우지 못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처형했습니다. 불과 일년이 안되어 만여 명의 백성들을 참살했습니다.  패국의 인구가 오만에 불과했는데도 말입니다. 일 년 만에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였습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살아남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왕길의 부친이 환관 중의 우두머리인 왕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타 지방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난을 일으켜도 죽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모두 죽을 지경입니다. 지금 백성들의 민심은 들판에 쌓여 있는 마른 풀들과 같은 상황입니다. 누군가가 불만 붙이면 엄청난 기세로 타올라 순식간에 들판을 태워버릴 기셉니다.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손아래 동생이며 교단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장량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셋째 장보가 불끈 나서며 강권했다.
“조정에서는 이미 우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가혹한 탄압은 시간문제입니다. 앉아서 죽느냐 서서 죽느냐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36방이 일제히 일어서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조정을 들러 엎고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백성들도 새 세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도들과 백성들이 함께 사는 길은 그것뿐입니다.”
동생들은 교단 내 과격파의 우두머리들이었다. 교단의 중진들 중 많은 자들도 이들을 추종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후한 왕조는 이미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국가라면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고, 국내 질서를 확립하여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조정과 지방관들이 강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법령을 무시하고 무한 착취를 감행함으로써 백성들의 생활기반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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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도 휘하의 속관의 하나. 민사업무와 이와 관련된 지방관의 고과평가를 담당하는 사도의 공부에는 천석급의 관리인 장사(長史) 1명 이외에 사도연 31명, 영사(令史) 등의 속관 36명을 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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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 주필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