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삼일절과 실종된 태극기
삼일절은 백여 년 전 잔악한 일제의 침탈에 분연히 일어나 삼천리 방방곡곡 ‘대한 독립 만세’의 우렁찬 함성이 메아리친 날이다.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그 날을 기념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 기념일로 삼아 현재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했다. 임시정부에서는 1920년에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국경일 명칭을 ‘독립선언일’이라 칭하였으며, 3월 1일을 ‘대한인이 부활한 성스러운 날(聖日)’로 내무부 포고를 공포하였다
3·1 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은 상해 올림픽대극장에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이후에도 3월 1일은 광복을 열망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온 민족에게 가장 큰 기념일이자 축제의 날이었으며, 중국, 미주 등의 해외 동포들 또한 3·1절이 되면 다양한 행사를 통해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였다.
광복 이후 미군정 치하에서는 1946년 2월 21일 군정법률 제2호 ‘경축일 공포의 관한 건’을 공포하여 경축일로 지정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에 다한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제한되었고, 행정명령 13호 ‘3·1절(독립일) 기념축하식 거행에 관한 건’을 통해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축하식을 제한하였다.
우리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3월 1일은 ‘삼일절’이라는 명칭으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국경일이 되었다.
매년 3월 1일에는 3부 요인을 비롯해서 광복회와 독립 유공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삼일절 기념식을 거행한다. 또 각 지역별로 1919년 3·1운동 당시 각 지역 만세 운동 광경의 재현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삼일절은 그저 주중에 하루 쉴 수 있는 공휴일 정도로만 대접받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제도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 한 집도 태극기를 내건 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내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밤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태극기를 게양한 모습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요즘 유튜브를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1960~1970년대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나곤 하는데 그때의 감성에 비춰보면 정말이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 국민학교에서는 국민 교육 헌장이라고 해서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하며 줄줄이 선생님 앞에서 암송해 보여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에서는 국어 시간에 육당 최남선 선생이 쓴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하는 기미 독립 선언서를 공부해야 했고 그 시절엔 국기 하강식이 있을 때면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하며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오른손을 왼 가슴에 올려 국기를 향해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이렇게 애국, 애족, 국기에 대한 경건한 마음가짐을 강조하며 아파트 창문마다 태극기가 휘날리던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된 듯 국가의 상징물인 국기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이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 상당수는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예 따로 게양대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소식까지 접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필자가 여러곳을 방문해봤는데 실제로 1-2인 가구가 많이 사는 신축 오피스텔이나 빌라엔 태극기는 물론 게양대조차 찾기 어려웠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별도로 게양대를 설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이모씨는 수년 동안 태극기 단 가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이씨는 "요즘 태극기를 누가 다느냐"며 "경비를 선 지 6년인데 매년 같은 풍경"이라고 말했다.
1000세대를 훌쩍 넘는 아파트 단지였지만 얼핏 봐도 태극기를 게양한 가구는 30가구가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국경일 태극기가 사라지는 데엔 장려 문화의 쇠퇴도 한 몫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은"예전엔 가구마다 태극기를 달라는 방송도 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해당 관리사무소 측은 "방송멘트를 입력해야 안내 방송이 송출되는 시스템인데 오늘 그 직원이 쉬는 날이다. 휴무일엔 최소 필요한 인력만 나온다"고 설명했다.
자치단체에선 지역민들에게 자율성 존중을 명목으로 태극기 게양에 대한 홍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태극기 게양 문화가 사라지면서 서울 시내에서 태극기를 살 수 있는 판매처를 찾는 것 역시 쉽지않다고 한다.
인근 동네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물어보니 "주문이 들어오면 한 세트씩 묶어서 진열하는데, 몇 년 째 사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1년에 1명 구매하는 정도라 재고를 쌓아놓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태극기 수요가 줄면서 판매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씨가 당초 태극기를 전시하려 한 곳이라며 안내한 진열장에는 각종 문구용품만 있었다.
매장 내에 태극기를 마련해도 찬바람이 부는 건 마찬가지였다.
태극기를 찾는 것은 외국인들이 관광 기념품으로 산다거나 고국을 찾은 재외 동포가 돌아갈 때 챙겨가기 위해 사는 것이 고작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태극기의 존재감이 약해진 데에는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이념대립 현상을 보이면서 수구 보수 세력이 집회 때마다 마치 소품처럼 태극기를 대한 탓도 한몫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태극기가 특정 집단의 전유물, 정쟁의 상징처럼 비춰지게 됐던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태극기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체성,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상징물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형식적인 국기 게양이 애국심하고 별 관계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 삼일절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 것이라면 ‘좋다 그럼... 적어도 삼일절과 같은 국경일 만이라도 나는 충만한 나라사랑의 정신으로 마음속의 태극기를 힘껏 펄럭였던가 자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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